얼마 전에 얻어온 조 말론의 향수 샘플들이 소위 조 말론의 시그니쳐 향이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나한테는 별로라서, 조 말론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구나 하고 시무룩하던 차에, Fragrance Combining 이라는 신세계를 알게 되었다. 조 말론은 애초에 제품을 출시할 때 다른 향들과 조합을 하는 것을 전제로 여러번의 레이어링 테스트를 거쳐서 출시한다고 한다. 즉 시그니쳐 향이라던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이나 미모사 앤 카다몸,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같던 것들이 그 자체로만이 아니라 레이어링을 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우드 세이지 씨쏠트가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괜찮았다. 자몽향이랑 부드러운 허브향, 음 괜찮았어.) 동생이 가지고 있는 넥타린 앤 블로썸도 맡아봤을 때 너무 약한 플로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다른 향들이랑 조합해서 많이 쓰는 향수인 모양이다. (그런데 동생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단호하게 '상술'이라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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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며칠전 블랙베리 앤 베이를 사러 조 말론 매장에 갔을 때, 마치 토이저러스에 온 어린애처럼 신나 킁킁거리던 내 앞에 딱 버티고 서서 '조 말론 처음이니? 넌 무슨 향을 좋아하니? 뭐 궁금한 거 없니?' 하면서 못살게 굴던(?) 직원 언니에게, 대답을 하긴 해야할 것 같아서, '응 난 원래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을 좋아해, 근데 오늘은 블랙베리 앤 베이가 궁금해' 라고 했더니, 언니가 '그 두 향이 원래 레이어링 하면 잘 어울리는 향이야' 라고 하면서 시향지 두개에 각각 뿌린 후 수맥 찾는 기기처럼 양 끝을 꺾어서 내게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응? 괜찮당?!? ㅎㅎㅎ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은 아름다운 숲의 냄새지만 (요즘은 이 향이 제일 좋아서 편애하는 중이다 ㅎㅎ) 남자스킨 같은 면이 있어서 동생이 40대 아저씨 향수 같다고 폄훼(?) 했었는데, 이게 은은하고 싱그런 과즙냄새가 나는 블랙베리 앤 베이랑 합쳐지니까 뭔가 중성화 되면서 향긋한 과즙냄새와 함께 나무 냄새가 난다. 오오. 새로운 발견 오오. 하긴 내가 좋아하는 두 향을 합쳐놨으니 내 코에야 당연히 좋으려나.
조 말론 공식 사이트에도 프래그렌스 컴바이닝에 대한 페이지가 있긴 하지만,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은 나름 뉴 향이라서 레이어링에는 올라와있지 않은 것 같다. 다른 블로그들을 뒤져보니 블랙베리 앤 베이와 레이어링 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와 레이어링을 하기도 하는 모양. 그럼 잉글리시 오크가 두개 중복되는 거 아닌가?;;; 여튼 레이어링이라니, 이거 조 말론의 새로운 향들을 알아가는 것 만큼 재미있지 뭔가. ㅎㅎㅎ
1. 블랙베리 앤 베이 + 잉글리시 오크 레드커런트 (or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블랙베리 앤 베이
일단 오늘 레이어링 해 본 것은 블랙베리 앤 베이 +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이 다 닳아가서 ㅎㅎ) 결론을 말하자면, 블랙베리와 레드커런트 때문에 싱그런 과즙향이 물씬 나지만, 둘 다 그렇게 달지 않은 향이라서 과즙향 자체는 은은하고, 그러면서도 우디한 잉글리시 오크 향이 베이스를 잡아주어 시원한 느낌도 든다.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이랑 레이어링 했을 때는 이것보다 우디한 향이 더 강했다. 오오 그래, 이것이 나의 시그니쳐 향수인 가보다! ㅎㅎ (무슨 시그니쳐 향수가 이렇게 매일 바뀌나 ㅋㅋㅋ 어쩔 수 없다. 향알못이라서 ㅎㅎㅎ)
2. 블랙베리 앤 베이 +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블랙베리 앤 베이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이것도 참 의외로 되게 잘 어울리는 조합. 블랙베리 앤 베이는 꽤 과즙향이 강한 편이라서, 약간 건조한 듯한 다른 향수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우드 세이지 씨쏠트에 있는 자몽향이랑 블랙베리향이 과즙향을 풍성하게 만드는 동시에 세이지의 허브향이 밑에 잔잔하게 감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블랙베리 앤 베리는 살짝 달달하고,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는 조금 짭짤하고 건조한데, 둘이 만나서 단짠 조합이.... 훨씬 더 풍성하고 독특한 향이 된 것 같다. 레이어링 하고 나서 처음 맡아보고 '우와' 소리가 절로 났다. 사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향들의 조합이라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듯.
3. 블랙베리 앤 베이 + 라임 바질 앤 만다린
라임 바질 앤 만다린블랙베리 앤 베이
그래서 샘플을 받아오고 나서도 처치곤란이었던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을 페어링 해 보기로 했다. 조 말론 공식 사이트에서는 레드 로지즈와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을 레이어 해 보라고 했는데, 막상 해 보니 별로였다. 바질의 톡 쏘는 향을 레드 로지즈가 잡지 못한다고 해야하나. 레드 로지즈 역시 장미 냄새 중에 뭔가 훅 치고 들어오는 독한 향이 있는데, 그 둘이 같이 훅 치고 들어오니 약간 맡기 괴로운 향이 되었다. 그래서 대신 만능(?)인 블랙베리 앤 베이랑 레이어링을 해 보았는데, 이건 오히려 괜찮은 듯. 이 조합도 조 말론 공식사이트에서 추천하는 조합이긴 하다. 블랙베리가 워낙 풍성한 향이라 쌉쌀하고 건조하고 톡 쏘는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을 좀 잡아주는 것 같다. 그냥 라임 바질 앤 만다린만 뿌리는 것보다는 블랙베리 앤 베이랑 함께 뿌리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조합된 향이 나쁘지는 않다. 비누냄새 같기도 하고. 어쩌다 한번 심심할 때 이 조합으로 뿌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4. 라임 바질 앤 만다린 +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라임 바질 앤 만다린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이 조합은 조 말론 공식 사이트에서 꽤 추천하는 조합인데, 이름도 uplifting pair라고 해서 아예 컴바이닝 세트로도 나와있다. 신기한 게 이 둘을 레이어링 하고 나니 원래 잘 안 느껴지던 시트러스 향이 더 강하게 난다. 우드 세이지 씨쏠트에 들어있는 자몽향이랑 같이 합쳐져서 그런가보다. 상대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바질향은 훨씬 사그라들고 우드 세이지 씨쏠트에 들어있는 다른 허브향에 묻혀서 훨씬 은은해진다. 그래서 허브향과 비누향이 살짝 나지만 그럼에도 첫향의 시트러스가 톡 쏘면서 좀 더 강하게 나는 조합이 된 듯 하다. 내가 바질향에 적응을 좀 해서 그게 그렇게 거슬리지 않게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 조합은 나쁘지 않다.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는 원래 굉장히 은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조합으로 하면 훨씬 색이 분명하고 개성있어진다. 그리고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은 조금 더 참을만(?) 해진다. ㅎㅎㅎ
5.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 미모사 앤 카다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미모사 앤 카다몸
역시 처치 곤란인 미모사 앤 카다몸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조 말론 공식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랑도 조합이 가능한 모양이다.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도 향이 좋은데, 둘 다 꽃향기인데 조합이 어떨까 궁금해 졌다. 둘을 뿌려보았는데,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가 좀 화한 면이 있어서 세련된 느낌을 더해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나한테는 미모사 앤 카다몸의 향신료 향이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가 좀 약해서 그런가, 미모사 앤 카다몸 한번 뿌릴 거면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를 두번쯤 뿌려야 균형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뿌릴 거면 굳이 두 향을 레이어 해서 뿌릴 필요가 있을까? 사실,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는 향 자체가 좋아서 그냥 그것만 뿌리는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6. 미모사 카다몸 + 튜버로즈 안젤리카
튜버로즈 안젤리카미모사 앤 카다몸
사실 둘 다 개별적으로 뿌렸을 때는 별로였는데, 막상 두개를 레이어링 해 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은 조합이긴 하다. 양쪽 다 꽃향기가 조금씩 들어있는데 두개를 합치니 꽃향기가 훅 하고 살아나는 것 같다.
7.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이건 조말론 공식사이트에서 Fruitty Pair라고 이름붙인 조합.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나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나 내가 둘 다 좋아하는 향이다 보니 좋아할 수밖에 없는 향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읭? 이건 또 의외다? ㅎㅎ 일단 화한 느낌이 드는 것은 분명하다. 잉글리시 페어나 잉글리시 오크나 둘 다 약간 화하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리지아 꽃향기와 레드커런트가 섞여서 그런가 어쩐지 꽃향기 같은게 뭉클뭉클 강하게 흘러나오고 그 와중에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약간 짠맛이..? 뭐지! (내 땀냄새라고 하진 말아주길 ㅎㅎ) 아무튼 ... 그냥 그렇다. ㅎㅎㅎ 이상하다. 둘다 좋아하는데. 이 향수는 그냥 각기 따로따로 쓰는 걸로.
8.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 +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이 조합도 첫 향은 의외로 괜찮다.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는 시원한 느낌을 내 주고,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의 향신료 향이 조금 가라앉으면서, 두 향에 다 있는 우디한 나무 냄새가 은근슬쩍 풍겨온다.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에 있는 향 때문에 약간 달달하기도 하고,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향 때문에 약간 싸하게도 느껴진다. 그래도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 향이 좀 세긴 해서, 정말 이걸 뿌리고 다니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잔향으로 갈 수록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 향이 더 강해진다. 나쁘지는 않다.
9. 벨벳 로즈 앤 우드 + 레드 로지즈
벨벳 로즈 앤 우드와 레드 로지즈 이 두 향수를 레이어링 하면 여성적인 꽃향기가 끝내준다는 리뷰를 어디서 보았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 이 둘 조합의 첫향은 꽤 괴롭다. 레드 로지즈에 톡 쏘는 신(?) 향이 섞여 는데 그게 영 장미향을 눈치채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그 톡 쏘는 향이 조금 사라지면서 잔향이 남는데, 잔향에는 두 향수의 장미향이 섞여서 꽤 향긋한 장미냄새가 된다. 그러나 잔향까지 기다리기 힘들어서 어디 이 조합 하겠나 싶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블랙베리 앤 베이 + 잉글리시 오크 레드커런트 or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은 참 좋았다. 블랙베리 앤 베이 +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조합은 참 좋았다. 두 향수가 만나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실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이나 미모사 카다몸처럼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다른 향수들은 단일 향수로 쓸 때보다 그나마 낫다는 거지, 그리고 조합을 하면 나를 괴롭히던 향들이 좀 약해진다는 정도지, 딱히 내가 좋아하는 향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은, 블랙베리 앤 베이 +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 (or 레드커런트) 조합을 당분간 써보겠다는 것.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