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에 귀국했다. 그리고 적어도 사계절은 한국에서 나게 되었다. 그런데 여름에는 몰랐는데 가을이 되자 슬슬 날씨가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아 그렇지, 이제 정말 가을이 되는구나. 계절 변화가 별로 없던 곳에서 오래 살다가 사계절이 있는 도시에 와서 그런지 어쩐지 설렘설렘하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이제 예전처럼 날씨 상관없이 향수를 뿌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전에 불가리 쁘띠 에 마망과 데메테르 퍼지 네이블을 뿌리고 걸으러 나갔다가 헉... 이건 절대 습한 날씨의 여름에는 뿌리면 안되는 향수였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하지만 그 말인즉슨 이제 계절별로 어울리는 향수를 뿌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계절에 어울리는 향수라니! 꺄하!
그러므로 오늘은 향탐기록이 아닌 향탐특집. 사계절에 어울리는 향수를 (소장향수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향수들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1차적으로는 날 위한 거지만 2차적으로는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1. 가을향수.
일단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으니 가을향수부터 정리해보자. 일단 가을에 제일 잘 어울리는 향수는 조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과 조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다. 둘 다 나무 냄새를 베이스로 하고 있어서 가을의 숲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향수이기 때문이다.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은 가을의 숲을 걷다가 헤이즐넛 열매를 밟았을 때 날 법한 파삭한 냄새가 난다. 레드커런트는 같은 숲을 걷다가 레드커런트 열매를 따서 콱 깨물었을 때 날법한 냄새가 난다. 이렇게 가을스럽고 아름다운 향수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레드커런트는 좀 더 여성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나무냄새가 강해서 남자 향수스럽다. ㅎㅎㅎ 그러므로 이를 보완하는 대책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레이어링! ㅎㅎ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합은 이 두 향수에 블랙베리 앤 베이를 더하는 것이다. 블랙베리 앤 베이도 사실은 중성적인 향수다. 싸하게 느껴지는 월계수 향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즙향이 제일 풍성하게 풍겨오는 향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스럽고 건조한 잉글리시 오크 시리즈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레드커런트와 레이어링 했을 때는 과즙향이 더 강해지지만, 역시 나는 헤이즐넛의 그 크리스프한 향이 더 좋다.
2. 여름향수.
왜 계절별로 안 가고 여름 향수부터 얘기하느냐면.. ㅎㅎㅎ 아직도 날씨가 덜 선선하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공기가 선선해서 가을향수를 뿌리고 갔지만 낮에는 여전히 더워서 땀을 흘리면서 일했다. 여름 향수는 일단 절대 텁텁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베이비파우더 계열은 무조건 멀리해야 한다. 대신 시트러스 향을 가지고 있는 가벼운 향수들이 아마 시원하고 상큼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여기에 소개한 소장향수 중에서 제일 여름스러운 향수는 불가리 오 떼 베르. 은은한 차 향기와 너무 방방 뜨지 않는 시트러스 향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또 다른 하나는 프레쉬 브라운 슈가. 사실 프레쉬는 화장품 향이 덜 해서 좋아하긴 하지만 가끔 지나치게 가볍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기 때문에 여름 외의 계절에 뿌리기엔 적합치 않게 느껴지는 향수이기도 하다. 얼마전 브라운 슈가를 뿌리고 일하러 갔는데 킁킁 냄새를 맡으며 어쩐지 익숙한 이 향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더라... 하고 생각해 보다보니... 약간 아이셔 사탕 냄새 ㅋㅋㅋㅋ 아무튼 달달하고 상콤한 이 향수는 여름에 가볍게 뿌리기에 딱이다. ㅎㅎ 모스키노 아이러브러브도 역시 같은 여름 향수 계열. 여름 향수들이야 무궁무진하게 많다.
3. 겨울향수
겨울 향수는 날씨가 건조하고 추울테니 부들부들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향수가 좋을 것 같다. 베이비파우더 계열의 향수들이 아마 좋을 것 같다. 겨울이 오면 뿌리려고 벼르고 있는 향수는 역시 불가리 쁘띠 에 마망. 달달하면서도 파우더리하고 그러면서 살짝 우유냄새도 나는 쁘띠 에 마망은 이번 겨울 중에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에는 조금 적합치 않을 수도 있다. ㅎㅎ 하지만 뭐 어때! ㅎㅎㅎ 여름에 자주 뿌리지 못한 이 향수를 겨울에 뿌리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ㅎㅎㅎ 그 외에도 다른 베이비 파우더 향수들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 데메테르 베이비 파우더나 데메테르 퍼지 네이블 등도 아마 겨울에 뿌리면 좋을 것 같다. 그 외에도 또 생각나는 건 역시 달달함의 끝을 보이는 입생로랑 파리지엔느. ㅎㅎㅎ 두꺼운 캐러멜 냄새가 나는 이 향수도 여름보다는 겨울에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ㅎㅎㅎ
4. 봄 향수
마지막으로 남은 봄향수. 봄은 사실 어느 향도 다 잘 어울리겠지만 봄의 설렘설렘한 느낌에 걸맞는 건 아무래도 꽃향기 풀향기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봄에 뿌릴만한 싶은 향수는 랑방 에끌라 드 아르페쥬 등의 복숭아 아이스티같은 향, 아니면 마크 제이콥스 데이지나 끌로에 시리즈 등 꽃향기가 나는 향수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조 말론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도 봄 향수로 분류하고 싶다. 잉글리시 페어의 시원함 때문에 여름에도 뿌리기 좋지만 짙게 남아있는 프리지아 잔향 때문에 어쩐지 꽃향기의 인상이 강한 향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사계절 뿌리게 되겠지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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