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마르지엘라 매장이 생긴 다음 매번 가서 향을 맡아보곤 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역시 파이어 플레이스가 좋다는 것과, 레이지 선데이 모닝이 의외로 괜찮다는 것. 레이지 선데이 모닝 같은 경우, 예전에는 그냥 꽃 냄새 좀 섞인 비누냄새라고 생각했는데 몇번 더 오며가며 맡아보니 깔끔하게 딱 떨어지면서도 뭔가 파우더리한 냄새가 났다. 아무튼 주머니에 시향지를 넣고 다니다가 갑자기 훅 맡았을 때 어? 이거 괜찮다? 라는 생각이 드는 향수여서 오며 가며 몇번 더 맡아본다. 

오늘 소개할 향수는 2019년 신상인 '스프링 타임 인 더 파크.' 굳이 번역하자면 '공원에서의 봄날'인데, 2019년 상하이라고 써 있는 걸 보면 상하이에 있는 공원을 봄에 걷다가 맡은 꽃냄새 과일냄새인가 보다. 신상이라 그런지 노트 정보를 찾기도 쉽지 않았는데, 탑노트는 백합과 자스민, 다마스크 로즈, 미들노트는 머스크, 우드, 그리고 잔향은 바닐라라고 한다. 노트 정보와 관계없이 내 시향기를 남겨보자면 일단 계열은 퍼지네이블 계열로 분류하고 싶다. 첫향은 부드러운 복숭아 냄새 같은 과일냄새에 웬지 모르게 약간 소금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바닐라인자 우유인지 부드러운 냄새가 같이 났다. 퍼지네이블처럼 파우더리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거나 우유 섞인 복숭아 냄새 같은 느낌은 비슷했다. 미들에서는 확실히 머스크가 섞이면서 서양배 냄새같은 것도 나고 뭔가 시원한 냄새가 나다가 잔향은 바닐라로 마무리 된다. 그런데 바닐라가 그렇게 달거나 강하지는 않고 그냥 탑노트에서 나던 부들부들한 우유냄새 같은 게 그냥 남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에 약간 쿰쿰한 꽃냄새. 레플리카 플라워마켓에서 맡았던 것 같은 꽃냄새가 남는다. 전반적으로 가볍고 달달하다. 남녀 공용이라고 써 있지만 확실히 여자들이 많이 뿌리고 다닐 향이고, 퍼지 네이블이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향수라고 하니 남자들이 좋아할 향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내 취향에는 역시 너무 여성스럽다. 나는 파이어 플레이스가 역시 좋아. 

 그나저나 오늘의 발견은 그것보다는 레이지 선데이 모닝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 원래 비누 계열 향수들은 다들 비슷비슷하다고 생각해 왔다. 딱히 정감이 가는 향수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웬지 오늘은 칼같이 떨어지는 시원한 느낌과 비누냄새 꽃냄새가 좋았던 것 같다. 오늘 만난 친구가 비누냄새를 좋아하는 애라서 레이지 선데이 모닝 시향지를 갖다주면서 '네가 좋아하는 향이지'라고 했더니 친구는 자기가 평소에 생각하는 내 냄새가 이것과 비슷하단다. 읭? 나한테서 이렇게 깨끗한 냄새가 날리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아니... 넌 예전에 나한테 아기냄새 같은 게 난다면서. 라고 했더니 아기 냄새 같으면서도 파우더리 하고 꽃 냄새 같기도 하고 그런 향이란다. 뭔가 아기냄새랑 비누냄새는 너무 다르지 않나 싶기도 하고 한편 코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 그냥 말을 막 지어내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이번 포스팅은 자랑으로 마무으리. ㅋㅋㅋ

덧: 친구에게 '내가 좋아하는 건 이건데' 라고 하면서 파이어 플레이스를 맡게 해 보았더니 친구가 으엑! 하면서 말했다. 이건 진짜 아니다.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 파이어 플레이스. ㅋㅋㅋㅋ

 

나는 어떻게 레플리카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에 반하게 되었나 

세포라가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궁금했다. 메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향수도 같이 들어오게 될까?예전 향탐기록에도 잘 나오지만 나는 사실   레플리카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에 오래전부터 꽂혀 있다. 나도 내가 왜 그런 군밤의 냄새(?)에 꽂혔는지는 모르겠다. 첫 시향기에도 그렇게 써 있다. 향은 참 좋지만 자기 몸에서 불타는 장작 냄새가 나길 바라는 사람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다고. 

예전 레플리카 시향기

2018/03/29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11) 특정 순간을 재현하는 레플리카 향수 (2) - 메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레이지 선데이 모닝, 바이 더 파이어플레이스

2018/03/19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10) 특정 순간을 재현하는 레플리카 향수 - 마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재즈클럽, 레플리카 플라워 마켓

그렇게 결론을 내렸건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그 향이 계속 생각나는 게 문제였다. 바이더 파이어 플레이스에는 알 수 없는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만 생각나고 심지어 그 향을 맡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도 세포라에 갈 때마다 쿰쿰거리며 시향을 해 보고 샘플을 받아오기도 했었다. 당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심지어 어느 잠이 안 오는 밤에 파이어 플레이스를 칙칙 공기 중에 뿌리고 잤다. 스스로에게 '여긴 산장이다. 캠프파이어다' 하고 최면을 걸면서. ㅎㅎㅎ 그러다가 훅 잠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정말 심각하게 파이어 플레이스를 구매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이즈가 100ml 하나라는 거였다. 게다가 당시 100ml의 가격은 미국 달러로 120불. 차라리 30ml 짜리가 있었다면 미친 척 덜컥 샀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몸에서 군밤냄새를 내기 위해 120불이나 내고 100ml나 되는 향수를 사겠냐 말이다. 그래서 결국 못 산 채로 귀국하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 와서도 자꾸 생각이 난다는 것이었다. 파이어 플레이스의 그 달콤하고 향긋하고 고소하고 알싸한 향기가 자꾸만 생각났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구할 수도 없었다. 검색해 본 결과 압구정에 있는 10꼬르소꼬모에서 레플리카 향수를 판매한다고는 했지만 재즈 클럽이나 레이지 선데이 모닝은 있어도 파이어 플레이스는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해외 직구도 알아보았다. 그러나 무려 15만원을 주고 사야했고 통관이니 뭐니 복잡한 절차도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에게 희소템이 되고 만 파이어 플레이스. 내년 3월에 미국에 학회 다녀올 때나 면세점에서 기웃거려 봐야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세포라가 한국에 들어왔다?

세포라가 오픈하던 날 온라인 매장도 열렸다. 사람들이 줄 서서 들어가는 곳에 같이 줄 서긴 싫고 온라인으로 확인을 해 보니 역시 파이어 플레이스가 있었다! 가격은 15만원. 아아 파이어 플레이스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하다니!! 그런데 손가락으로 주문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 역시나 마음에 망설임이 생겼다. ... 군밤냄새를 위해 내가 정말 15만원이나 지불하고 100ml나 되는 향수를 살 필요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며칠 더 생각해 보자 하고 화면을 껐는데, 며칠 후 다시 들어가 보니 파이어 플레이스만 품절이었다. 왜!? 왜 파이어 플레이스만?! 재즈클럽도 있고 레이지 선데이 모닝도 있고 대중적인 향수도 많은데 도대체 왜 파이어 플레이스만! 여튼 파이어 플레이스는 그렇게 또 다시 희귀템이 되고 말았다. 나에게 집착과 애증을 남긴 채... ㅎㅎㅎ

그러던 어느날 메종 마르지엘라 매장이 신세계에 들어왔다?

그것도 내가 늘 지나가는 향수골목 한 복판에.  아니 레플리카 향수가 대체 몇개나 된다고 이런 매장을? (사진을 보면 쭉 세워놓은 향수가 몇개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갑작스럽게 레플리카 매장이 생겨버리면서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는 더 이상 희귀템이 아닌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언제든 파이어 플레이스를 시향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가서 오랜만에 맡아보니 역시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0ml 짜리를 사기에는 망설여진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파이어 플레이스와 밀당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신세계 강남점에 들어온 메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매장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는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향인 것 같다. 같이 매장을 방문한 친구에게 이게 바로 나에게 애증과 집착을 남긴 파이어 플레이스다 라고 말하니 친구는 시향해 보면서 좋은 향이라며 눈을 치켜떴다. 그런데 니가 말한 게 뭔지는 알겠다. 군밤 냄새인데 이런 냄새가 몸에서 나길 바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차라리 방향제로 쓰면 너무 좋을 거 같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한참 후에도 또 얘기를 꺼냈다. 그 파이어 플레이스 정말 좋은 거 같다고. (그렇게 친구도 파이어 플레이스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반면, 엄마와 함께 매장 앞을 지나가다가 엄마 이게 내가 좋아하는 향이야- 하고 손에 뿌렸더니 엄마는 온상을 찌뿌리며 말했다. 이건 정말 아닌 거 같다. 라고. 그러니까 파이어 플레이스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제는 누구나 시향 가능한 메종 마르지엘라 매장에 방문해 보시길 바란다. ㅎㅎㅎ

참고로 시향지가 엄청 귀엽다. 레플리카 향수는 약병처럼 생겨서 그 위에 패브릭으로 라벨이 붙어 있는데, 시향지가 그 라벨 모양이다. 시향지도 귀엽지만 그 위에 향수 정보가 쓰여 있어서 헛갈리지도 않고 참 좋다. 

그러다보니 오며가며 모은 시향지만 이렇게 많아졌다. 어떤 순간을 재현한 것인지 기록이 적혀있다. (내 허벅지는 신경쓰지 말자 ㅎㅎ) 파이어 플레이스 시향지는 핸드폰 케이스에 끼워두었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가 신용카드에 베고 있는 중이다. ㅋㅋㅋ 그리고 여태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레플리카의 다른 향수들도 맡아보고 있다. 언더 더 레몬트리라던가, 위스퍼스 인더 라이브러리 라던가, 비치워크라던가. 그러니 시향기를 곧 기대하셈! ㅎ

요즘은 도서관 가는 길 향수골목을 지나며 시향지 하나씩 가져오는 게 낙이다. 오늘은 딥티크에 가서 롬보르단로, 베티베리오, 그리고 탐다오를 시향지에 뿌려 가져왔다. 롬보르단로는 생각보다 꽃향기가 너무 강해서 가방 속에 넣어버렸고 (읭?) 베티베리오탐다오는 손에 들고 킁킁거리며 도서관으로 올라왔다. 딥티크의 향수 중 유명하다는 것들은 다 맡아본 것 같은데, 내게는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도손이나 롬보르단로같은 딥티크의 꽃향기는 좋긴 하지만 내겐 좀 멀미나는 향들이다. 필로시코스는 나쁘지 않았지만 곧 질렸고, 탐다오가 제일 맘에 들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리뷰는 탐다오.

노트정보는 다음과 같다.

탑노트: 로즈우드, 사이프러스, 머틀나무. 

미들노트: 샌들우드, 시더우드

베이스노트: 스파이시노트, 앰버, 화이트머스크, 로즈우드.

노트 정보를 보면 알겠지만 주로 나무다. 탐다오는 전반적으로 향긋한 나무냄새다. 이런 냄새를 내가 어디서 맡아봤더라 라고 생각했는데 인터넷에서 노트 정보를 검색하다보니 절냄새란다. 절냄새라고 하니 뭔지 알 거 같고 확실히 절냄새 같은 면도 있어서 빵터지긴 했지만, 절냄새라고 격하하기에는 그래도 좀더 향긋하고 스파이시 하다.

오래된 나무 건물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들이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한 선배 둘과 안동 병산서원에 답사를 갔다가 바람 솔솔 불어오던 만대루에서 살짝 잠이 들었는데 그때 바람결에 실려오던 향긋한 나무냄새 같은 것. 사람 손이 많이 닿아 그 온기가 스며 반들반들한 나무 마룻바닥에서 나던 그런 편안하고 시원한 나무 냄새. 거기에 알싸하고 스파이시한 향 냄새가 추가 되니까... 결국 절냄새가 되네...ㅋㅋㅋ 그래 인정하자. 탐다오는 절 냄새다. 절냄새보다 조금 더 스파이시하고 향긋하지만 절 냄새다. 그런데 그래도 좋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무냄새니까.

....그런데 역시 남자향수라 한다. ㅎㅎㅎ

딥티크 탐다오

베티베리오는 나무냄새이긴 하지만 꽃냄새가 더 많이 가미된 느낌이다. 꽃향기 때문에 우디하면서도 탐다오보다는 여성스러운 향이라고 할만하다. 그런데 왜 그런지 탐다오만큼 시원하지는 않고 게다가 중간에 짭짤한 냄새같은 게 난다. 그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다. 클로브인가? 왜 블루바틀 커피 마실 때 치커리 향같은 그런 짭짤함. 아무튼 짠 꽃나무 향기 정도 되겠다. 내 취향은 아닌듯 하다. 

탑노트: 베르가못, 그레이프 푸르투, 레몬, 만다린 오렌지.

미들노트: 제라늄, 로즈, 넛맥, 클로브

베이스노트: 베티버, 머스크, 시더우드

 

요즘은 새로운 향수들을 이거저거 시향해 보고 있지만 그래도 한바퀴 빙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듯 항상 조말론으로 돌아오게 된다. 조말론의 향들은 다른 향수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화장품 냄새 같은 인공적인 향기가 덜 하고, 프루티 플라워 계열도 그렇게 심하게 달거나 독하지 않아서다. 

오랫동안 조말론의 향수를 시향하면서 이제 조말론의 거의 모든 향수들을 맡아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1) '싸한' 향이 나는 향수들은 정말 너어어어어어무 좋다. 여타 브랜드의 향수들이 흉내낼 수 없을만큼 좋다. 대표적인게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의 페어향, 그리고 블랙베리 앤 베이의 월계수 향 같은 것들이다. 조말론의 '알싸한' 그 향들은 시원하면서도 중성적이어서 꽃이건 과일이건 너무 달지 않게 향을 잡아준다. (2) 가끔 예상을 깨며 '톡 쏘는' 향들을 만들어낸다. 장미향이나 바질향이라면 대부분은 뭉게뭉게 부드러우면서 훅 치고 들어오는 향이기 마련인데, 조말론의 바질향이나 장미향 같은 건 '톡 쏘는'향이라서 시고 강렬하다. 내 취향에는 그저 그렇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할 수도. 대표적인게 라임 바질 앤 만다린, 그리고 레드 로지즈, 벨벳 로즈 앤 오우드 같은 것들. (3) 물 계열의 향들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것 같지만 나한테는 멀미가 심하게 나서 아예 시향도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대표적인 것들이 와일드 블루벨, 피오니 앤 블러시 스웨이드. (4) 마지막으로 우디하고 시원한 향들이 있는데 그 향들은 남들이 자꾸 남자향수 같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나한테는 너무 매력적이다. 대표적인 게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 넛,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그리고 오늘 리뷰할 오우드 앤 베르가못이다. (조말론 웹사이트에는 헤이즐넛은 스파이시로, 레드커런트는 프루티로 분류가 되어있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두 향수 다 잉글리시 오크 향이 제일 세다. -_-) 

조 말론의 향수들 중 까만 병에 담겨있는 향수들을 '인텐스' 콜롱이라고 한다. 이 계열의 향수들은 전반적으로 우디하고 매캐하다. 오우드 앤 베르가못은 역시 우디하고 매캐한 맛이 있으면서도 첫향부터 끝향까지 아주 시원하고 깔끔한 향이 난다. 첫향에서는 살짝 버가못의 상큼하고 달달한 향이 난다. 버가못 답게 그렇게 시거나 심하게 달지 않고 대신 달달하고 시원한 느낌이다. 시더우드는 노트 정보에는 미들노트부터 나는 걸로 되어 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전반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우디한 향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우디하면 살짝 건조한 느낌이 들기 쉽지만 그럼에도 버가못 때문인지 그렇게 건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미들노트부터 어디서 맡아본 거 같은 향긋한 냄새가 낮게 깔리기 시작하고 뒤로 갈 수록 더 진해진다. 오우드가 뭔지 모르겠어서 이게 오우드인가 싶었는데... 이걸 어디서 맡아 봤더라... 하고 생각해보니, 서예할 때 먹물에서 나던 냄새랑 비슷하다. 도서관에서 시향지 옆에 놓고 글 쓰고 있었는데 누가 옆에서 붓글씨 쓰는 줄. ㅎㅎㅎ 이렇게 써 놓으면 의잉? 어찌 그런 향이 몸에서 나길 바란단 말이오? 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다. 선비의 향기라고 할까? ㅋㅋㅋㅋ 그보다는 나무 향이 강하고 향긋한데 버가못 때문에 세련미가 더해져서, 선비는 선비라도 센스있고 세련된 선비라고 해야할까. (대체 뭐라는 거야ㅋㅋㅋ). 어쨌건 중요한 건 코가 즐겁다는 것이다. 다른 시향지랑 비교해서 맡아봐도 역시 오우드 앤 버가못 시향지를 맡을 때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음에 든다. 

탑노트 : 베르가못

미들노트: 시더우드

베이스노트: 오우드 

다만... 아무리 맡아도 남자 향수라는 게 문제다. 잉글리시 오크 시리즈 정도로 남자 스킨 냄새 같은 건 아니지만, 당장 오우드 앤 베르가못으로 검색만 해도 '남자 향수 추천'이라는 사이트들이 제일 위에 뜬다. 아니 대체 왜 내가 좋아하는 향수들은 다 남자 향인거야. 잉글리시 오크 시리즈도 나는 여전히 너무 좋은데 언니는 남자향수라고 뿌리지 말라고 한다. 내가 '커피집 직원이 좋다고 뭐 뿌렸냐고 물어봤어' 라고 했더니 언니는 말했다. '자기가 뿌리고 싶어서 물어봤나 보지~!!' ㅋㅋㅋㅋ 

어쨌거나 훅 치고 들어오는 꽃냄새나 과도하게 상큼달달한 과일 계열 향수들은 내게 종종 곤혹스럽다. 물 냄새가 섞여있는 꽃 냄새들은 독하지는 않지만 멀미가 난다. 그리고 나는 자꾸 시원하고 알싸한 향에 끌린다. 그리고 나무냄새가 좋다. 그러다보니 자꾸 남자향수를 좋다고 하나 보다. 여성스러운 향인데도 내가 반했던 향은 딱 크리드 어벤투스 포 허 하나인데 그건 인간적으로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다. =_=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래도 내 코가 즐거운 대로 남자 향수를 뿌리고 다니려 한다. 기다리시오, 오우드 앤 버가못. 내가 열심히 일하고 월급을 저축하여 곧 그대를 맞으러 가리다. 그런데 그대도 꽤 비싸오. 인텐스 계열 콜롱들은 대체 왜 그렇게 비싸오. 솔직히 지속력도 별로잖소. 물론 나 같은 향탐생들에게야 지속력 짧은게 또 매력이긴 하오만. 

덧1:

오우드 앤 버가못은 뭐랑 레이어링 하면 좋아요? 라고 매장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매장 직원이 '조말론의 모든 향이랑 다 잘 맞아요'라는 정말 무성의한 답변을 해 주었다. 조말론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이랑 잘 어울린다고 하던데. 나는 두 향을 다 좋아하니 그렇게 레이어링 해 볼 용의는 있다.... 다만 남자향수 + 남자향수가 여자향수가 될리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만.  

덧2:

언니가 좋아한다는 다크 앰버 앤 진저릴리도 시향지를 가져와 다시 시향해 보았다. 매캐하면서도 어딘가 우드 세이지 앤 씨솔트 같은 부드러운 향과 함께 꽃향기 같은 것도 풀풀 난다. 그런데 약간 짠내가 난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꽃향기 같은 것 때문에 인텐스 계열이라도 이건 좀 여성향수 같은데 말이지. =_=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나온 오늘은 어쩐지 여성스러운 향수를 뿌리고 싶어서 향수골목을 지나며 뿌려본 향수는 딥티크 필로시코스. 딥티크에서도 제일 유명한 향수들 중에 하나다. 송혜교가 뿌려서 유명해졌다는 듯. 

 

공용향수라고 하긴 하지만 아무리 맡아도 여성스러운 과일 향수다. 과일 향수라고는 해도 흔히 맡을 수 있는 과일 향수들처럼 막 상큼달콤하지는 않다. 무화과도 맛이 자극적이지 않은 과일이지만 (적당히 달달하다, 신 맛은 없다) 향수 역시 적당히 달달한 향이다. 그런데 첫 향에서는 무화과를 따서 콱 뭉갰을 때 날 법한 생 무화과의 향이 센 편이다. 아주 날 것의 풀 냄새가 나서 싱싱한 느낌을 준다. 이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탑노트에서도 코코넛 냄새가 나지만 미들노트부터는 더 코코넛 냄새가 강하게 난다. 하지만 무화과 냄새 + 코코넛 냄새라고 하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달달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텁텁하다. 우드 세이지 앤 씨 쏠트의 텁텁함과 비슷한데 좋게 말하면 부드럽지만 어쩐지 답답한 냄새이기도 해서 쨍하고 시원하고 화한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그리고 이 텁텁함 때문에 여름보다는 겨울에 더 어울릴 것 같은 향수다. 개인적으로는 탑노트를 맡으면서는 그 싱싱함이 좋아서 아 신선하다 고급진 냄새다 하고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조금 지겨워졌고 그게 지나면서도 계속 텁텁한 냄새가 나니 좀 괴로웠다. 되려 다른 손목에 뿌렸던 어벤투스 포 허가 아무리 봐도 더 내 취향인 듯. 가성비를 생각하면 나한테는 사서 뿌릴 향수는 아닌 듯 하다. 

노트정보는 아래와 같다. 

탑 노트: 무화과잎, 무화과

미들 노트: 코코넛, 그린노트

베이스 노트: 시더우드, 우디노트, 무화과 나무

 

지하철 역에서 내려 도서관 가는 길에 신세계 면세점을 통과하는데 언제나 여러 향수브랜드 부스가 즐비한 향수골목을 지나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눈길만 흘깃 줘도 후다닥 앞으로 나와 뭘 찾으시냐 묻는 직원이 부담스러워서 어버버 하다가 도망가곤 했지만 어느새 나도 서울시민으로 정착한지 세달쯤 되지 않았나. 그러니까 뻔뻔하게 이거 저거 시향해 볼 수 있을까요? 하면서 사지도 않을 향수를 맡아보고 뿌려본다. 예전에 아마존 등으로 미니어쳐를 구해서 향수를 맡던 시절에 비하면 참 얼마나 향수시향이라는 취미생활에 도움이 되는 환경인가. ㅎㅎ 여튼 한참을 크리드 시향에 빠져 있다가 크리드 직원 언니가 내 얼굴을 알아볼 때쯤 된 거 같아서 요즘 살짝 발길을 돌린 곳이 바이레도 부스. 요즘에는 유명하다는 블랑쉬와 라튤립, 집시워터, 모하비 고스트, 블랙 사프론 등을 맡아보았다. 그 중에서 오늘 쓰려는 향수는 발다프리크

발다프리크를 시향한 이유는 어느 웹사이트에선가 발다프리크가 메종 마르지엘라의 바이 더 파이어플레이스와 비슷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이상하게 파이어 플레이스에 꽂혀 있는데, 그게 그렇게 중독성 있는 향이었나 자꾸 맡아보고 싶고 생각나고 그런다. 그런데 한국에서 구할 수가 없어서 미국에서 사왔어야 해- 하고 울며 땅을 치는 아이템이다. 아무튼 아쉬운 마음에 자꾸 파이어 플레이스를 검색해 보는데 비슷한 향으로 바이레도 발다프리크가 종종 언급되길래 궁금해져서 오늘은 반드시 바이레도 부스에서 발다프리크를 시향해 보리라 하는 기대감을 안고 발다프리크 시향지를 들고 도서관에 왔다.

그런데 응..? 향이 전혀 다르다? 파이어 플레이스는 장작에 군밤타는 냄새 비슷한데 일단 여성 향수는 확실히 아니고 심지어 남성 향수라기에도 너무 탄내라서 그냥 군밤의 향수다. ㅋㅋㅋㅋ  그런데 바이레도는 탑노트는 딱 향긋한 여성향수 느낌이다. 버가못과 레몬이 탑노트에 들어가 있는데 오히려 내 코에는 좀 고급진 데메테르 퍼지 네이블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복숭아와 크림 맛이 반씩 섞인 추파춥스 같은 향 혹은 휘핑크림을 얹은 피치코블러 같은 향이라고 생각했다. 미들노트에서는 시트러스 향이 훅 사라지면서 달달하고 향긋한 바닐라 같은 냄새가 남는다. 잔향에서는 바닐라가 잦아들면서 서서히 나무냄새로 바뀐다. 

노트정보는 다음과 같다. 

탑 노트 ㅣ 아프리칸 메리골드, 베르가못, 레몬, 네롤리, 천수국부쿠

미들 노트 ㅣ 시클라멘, 재스민, 바이올렛

베이스 노트 ㅣ 블랙앰버, 모로칸 시더우드, 머스크, 베티버

아무튼 나에게 발다프리크의 전반적인 인상은 퍼지 네이블 게열이라는 거다. 물론 단일노트인 퍼지네이블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고급진 향이지만 계열이 그렇다는 거다. 예전에 무슨 뷰티 프로그램에선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향수로 퍼지네이블을 꼽았다고 하는데 향이 달달하고 부드러워서 청순하기도 하고 아기향수 느낌도 나고 그래서 그랬던 거 같다. 그런데 발다프리크도 내게는 비슷한 느낌이다. 튀지 않게 상큼하고 부드럽고 달다. 좋은 향수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군밤 향수를 그리워했던 나는 못내 아쉬웠다. 

바이레도만 시향하기 아쉬워서 모하비 고스트도 시향지를 들고 왔다. ㅎㅎㅎ 모하비 고스트의 탑노트에서는 꽃냄새와 함께 물냄새가 났다. 나는 물비린내에 취약해서 물과 관련된 향수는 거의 무조건 멀미를 한다고 보면 되는데, 그래도 여타 물 관련 향수들에 비해 물 비린내가 심한 편은 아니었다. 레플리카의 플라워 마켓에서 나는 물냄새 비슷하게 꽃잎에 맺혀있는 싱싱한 물방울 느낌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역시 물 냄새는 내 취향은 아닌 듯. 아니 모하비 고스트라며. 모하비는 사막인데 왜 물냄새가...) 코를 대고 맡으면 좀 괴롭지만 팔락팔락 시향지를 흔들어 보면 매우 좋은 냄새가 났다. 그래도 탑노트는 꽤 은은한데 미들노트에서는 훅 하고 각종 꽃냄새가 치고 올라온다. (각종 꽃냄새라니 정말 무성의한 표현력이군 ㅎㅎㅎ) 내 코에는 장미 같은데 노트 정보에 따르면 목련이라고 하니 목련인걸로. ㅎㅎㅎ 노트 정보는 아래와 같다. 

탑 노트 ㅣ 암브레트, 네스베리

미들 노트 ㅣ 매그놀리아, 샌달우드, 바이올렛

베이스 노트 ㅣ 시더우드, 머스크, 앰버

 

"향수 뭐 뿌리셨어요?" 

커피집 직원이 물었다. 조 말론 블랙베리 앤 베이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을 레이어링해서 뿌린 날이었다. 이렇게 긴 이름을 마치 주문을 외우듯 읊어주고 나니 본인이 향수에 관심이 많노라며 우디한 향을 좋아한다고 했다.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 향을 좋아하지만 남자 스킨냄새 같은 면이 있어서 조심스러웠는데 칭찬을 받으니 갑자기 잉오헤에 대한 자신감이 한껏 치솟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분이 말했다. 

"저는 톰포드를 좋아해요."

톰포드라. 니치 향수에 대해 조사할 때 한쪽 귀로 자주 들었던 이름이긴 한데, 조말론에 꽂히는 바람에 다른 쪽 귀로 날아가버린 그런 향수 브랜드였다. 톰포드에도 잉글리시 오크 같은 향수가 있으려나 싶어서 물어봤다.

"톰포드는 뭐가 좋아요?"

"제가 좋아하는 건 패뷸러스요."

그러나 귀가 어두운 나는 또 잘못 알아듣고...

"히글러스요?" (내가 말해놓고도 어쩐지 굉장히 흉악한 향이 날 것 같은 향수 이름이었다. ㅎㅎㅎ) 

여튼, 그래서 도서관에 오는 길 신세계 면세점들을 지나가다가 톰포드에 가서 한번 맡아본, 톰포드 XX 패뷸러스.

톰포드 패뷸러스는 사실 차마 부르지 못할 이름을 가지고 있는 향수였다. 마치 디자인인 것처럼 빨간 줄로 그어진 저 부분에는 사실....

원래 이름인 욕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ㅋㅋㅋㅋ 아니 향수 이름에 F-word 를 넣으면 어떻게 부르란 말이냐. 그래서 70년대도 아닌데 한국에 들어올 때 검열을 거쳐 F단어 에 빨간 줄을 그어 들어온, 톰포드의 패뷸러스 (영어이름은 퍼킹 패뷸러스, 직역하면 '겁나 멋짐' 정도 되겠다).

그래서 어땠냐고? 음. 예상 밖의 냄새가 났다. 일단 조말론의 잉글리시 오크와는 아예 계열이 다르다. 베이스 노트에 화이트 우드가 들어가 있긴 하고 매캐한 향이 나기는 하지만 오히려 조말론으로 치면 Myrr and Tonka 라던가 하는 인텐스 계열 향과 비슷한 느낌이다. 매캐하고 살짝 달달한 바닐라 향이 난다는 점에서는 다크앰버 앤 진저릴리와 비슷하지만 거기에 가죽냄새와 약간의 쇠냄새(?)도 섞인 듯 해서 좀 더 남성적으로 느껴진다. 웬지 아랍 향신료같은 인상은 비슷하다. ㅎㅎㅎ 흔히들 관능적인 향이라고 한다는데 '관능적인 향'이라는 게 뭔지 나는 아직도 당췌 모르겠다. 확실히 화려하고 강렬한 향인 건 알겠다. 하긴 다크앰버 앤 진저릴리도 처음에 맡았을 때는 '읭' 했지만 지날 수록 조금 중독성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으니,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향수 역시 더 맡다보면 좋아하게 될 수도. 

아래는 노트 정보다. 

탑노트: 라벤더, 세이지

미들노트: 가죽, 바닐라, 비터 아몬드

베이스 노트: 통카 빈, 앰버, 레더, 캐시미어, 화이트 우드. 

 

덧:

왼쪽 손목에는 톰포드의 패뷸러스를, 오른쪽 손목에는 크리드 어벤투스 포 허를 뿌리고 도서관에 왔다. 뿌리자 마자 코를 댔더니 예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상큼한 과일향이 안 느껴지길래... 너무 예전에 과대평가를 했었나? 하고 생각하며 왔는데... 일하다보니 정말 아름다운 미들노트가 훅 치고 올라온다. 이건 사과향이랄지 꽃향이랄지. 은은하고 여성스러운 듯 하면서도 발랄한 그 느낌. 아.. 어벤투스 포 허... 네가 진짜 15만원만 더 쌌어도... (너무 깎았나? ㅎㅎㅎ) 언젠가는 꼭 사고말테다, 치토스. 

덧 2:

양 손목에 두개의 다른 향수를 뿌렸으니 차마 어디에 더 뿌리지는 못하고... 조말론에 갔다가 신상인 파피 앤 발리를 시향지에 뿌려 들고 왔다.  파피 앤 발리는, 예전에 한정판으로 나온 '잉글리시 필드' 시리즈 중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던 향을 온고잉 상품으로 만든 거라고 한다. 잉글리시 필드 시리즈는 한번도 못 맡아보다가, 얼마전 친구가 들고 다니던 그린 어쩌구 (...향수 블로그에서 이게 쓸 표현인가) 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나서 파피 앤 발리도 한번 맡아봤는데... 곡식 냄새 많이 나고 약간은 쿰쿰하고 따뜻한 냄새가 났다. 조 말론은 참 자연적이어서 좋단 말야. 조 말론 매장에 간 김에 요즘 살짝 눈길을 주고 있던 오우드 앤 버가못도 시향지에 뿌려서 들고 왔는데, 역시 좋다. 다음에는 오우드 앤 버가못 손목에 뿌려봐야지. ㅎㅎ

이사 오고 나니 내 동선에 신세계가 있어서 향수탐방의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다. ㅎㅎㅎ 

크리드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몇년전부터 나의 최애가 은지원이기 때문이다. ㅎㅎㅎ 최애가 쓰는 향수가 뭔지 궁금한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서 은지원 향수를 검색해 보니 크리드 밀레지움 임페리얼이라고 해서 그게 대체 어떤 향인지 맡아나 보자고 생각하던 어느날. 백화점 면세점에 크리드가 있길래 가서 한번 뿌려 보았다. 첫 향은 으윽- 남자 향수다. 화장품 향 좀 강한데? 였다. 글쿠나, 이런 향수구나. 하면서 일하러 도서관에(?) 갔는데... 한참 일하다 보니... 어? 미들노트가 되게 좋다? 언제 치고 올라온 건지 달달하고 향긋한 과즙냄새가 짭짤한 소금냄새에 섞여서 났다. 허브냄새같은 쌉싸름한 향이 감도는 은은한 꽃향기 (이게 아이리스일까)와 함께 너무 달지 않은 과일향이 난다.  전반적으로는 아주 부드러운데 그 모든 냄새들이 균형이 잘 잡혀 있어서 향이 세련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없이 킁킁 거리다 보니 베이스 노트로 바뀌었는데 약간 짭짤한 소금 냄새와 함께 부드러운 잔향이 남았고, 잔향은 굉장히 은은하고 부드럽게 나다가 어느 순간 쓱 사라진다. 뭐지? ㅎㅎ 살짝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향수. 굳이 비교하자면 전반적으로 약간 조말론 우드 세이지 앤 씨 쏠트랑 비슷한 느낌인데, 은은한 과즙향과 약간 짭짜름한 씨쏠트의 조합이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밀레지움 임페리얼은 우드 세이지 앤 씨 쏠트보다 덜 건조하고 미들노트의 과즙향에 꽃향기가 섞여 있어서 훨씬 더 향긋한 느낌이 든다. 첫향은 남자 향수 느낌이 강하게 나지만 미들노트와 베이스 노트의 부드러움과 향긋함 때문에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매력적인 향수였다. 그래서 그 뒤로도 몇번 더 지나가면서 손목에 뿌려 보았다. (죄송합니다. 직원분... 사지도 않을 걸 자꾸 뿌려서 ㅎㅎ) 그런데 뿌리면 뿌릴 수록 끌리는 향수였다.  은지원... 좋은 향수 뿌리는 구나. 

크리드 밀레지움 임페리얼

탑 노트 :버가못, 과일 노트, 씨솔트

미들 노트 : 아이리스, 레몬, 만다린 오렌지

베이스 노트 : 머스크, 앰버, 우디노트, 씨노트

노트 정보는 다음과 같다. 개인적으로는 첫 향에서 과일 노트나 소금기는 별로 강하지 않다고 느꼈다. 오히려 미들노트에서 만다린 오렌지인지 과일 냄새 꽃냄새가 참 좋았다. 잔향에서도 머스크나 앰버는 별로 강하지 않고 바다노트와 우디 노트가 강한 듯 하다. 

밀레지움 임페리얼을 호시탐탐 눈독들이며 뿌리다 보니 옆에 있던 다른 향수에도 눈이 갔다. 그 향수의 이름은 크리드 어벤투스 포 허. 원래 어벤투스는 남자 향수로 알고 있었는데 여자용으로 나온 게 어벤투스 포 허인가 보다. 

크리드 어벤투스 포 허

탑노트: 패츌리, 청사과, 레몬, 버가못, 핑크페퍼, 바이올렛

미들 노트: 장미, 샌달우드, 머스크

베이스: 복숭아, 블랙커런트, 라일락, 앰버

어벤투스는 첫 향에서 훅 하고 과즙향과 꽃향기가 풍겨온다. 사과향과 버가못향이 강해서 상큼하고 달달한 느낌이 들지만 그렇게 심하게 달지는 않고, 이런저런 꽃냄새가 섞여서 다채로운 향이지만 균형이 잘 잡혀 있어서 깔끔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상큼함 때문인지 밝으면서도 은은하게 풍겨와서 우아한 향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루티플로럴 계열은 가끔 꽃냄새의 잔향이 숨막히거나 과일향이 지나치게 달거나 할 때가 있는데, 어벤투스는 인공적인 냄새가 거의 없고 꽃이랑 과일향이 잘 조화되어 있다. 여튼 최근 맡아본 플로럴프루티계열의 향수 중에서는 단연 최고로 세련된 향인 듯. 그런데 이 향수의 문제점은 베이스 노트가 평범하다는 것이다. 잔향을 주도하는 건 머스크였는데, 탑노트나 미들노트에 비해서 딱히 고급지지가 않았다. 페이스샵에서 맡을 수 있는 화이트머스크랑 비슷하기도. 사실 머스크향에 멀미를 일으키는 나로서는 조금 그 잔향이 아쉽다. 하지만 탑노트와 미들노트만큼은 정말 너무 매력적인 향수였다. 

이렇게 매력적인 향수들이지만 인간적으로 가격이 너무 비싸다. 아니 저 사진에 있는 어벤투스 포 허 사이즈가 글쎄 240불이고 한화로는 29만원이라고 한다. 아니 저런 코딱지만한 병에 있는 향수를 어떻게 30만원씩이나 주고 산단 말인가. ....은지원... 돈이 많았구나... ㅜ_ㅠ 하긴 사람마다 다 돈을 쓰는 분야가 다른 거니까. 나는 같은 돈을 내고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이나 빔 프로젝터를 살 수는 있지만 그만한 돈을 내고 향수를 살 수는 없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도서관 가는 길에 크리드 매장을 기웃거리며 손목에 뿌려보고 킁킁거리면서 일하는 정도다. ㅎㅎㅎ 

 

 

 

 

 

 

 

얼마전 한국에 귀국했다. 그리고 적어도 사계절은 한국에서 나게 되었다. 그런데 여름에는 몰랐는데 가을이 되자 슬슬 날씨가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아 그렇지, 이제 정말 가을이 되는구나. 계절 변화가 별로 없던 곳에서 오래 살다가 사계절이 있는 도시에 와서 그런지 어쩐지 설렘설렘하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이제 예전처럼 날씨 상관없이 향수를 뿌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얼마전에 불가리 쁘띠 에 마망과 데메테르 퍼지 네이블을 뿌리고 걸으러 나갔다가 헉... 이건 절대 습한 날씨의 여름에는 뿌리면 안되는 향수였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하지만 그 말인즉슨 이제 계절별로 어울리는 향수를 뿌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계절에 어울리는 향수라니! 꺄하! 

그러므로 오늘은 향탐기록이 아닌 향탐특집. 사계절에 어울리는 향수를 (소장향수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향수들 중심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1차적으로는 날 위한 거지만 2차적으로는 이 블로그를 읽으시는 여러분들을 위해서. 

1. 가을향수.

일단 날씨가 선선해지고 있으니 가을향수부터 정리해보자. 일단 가을에 제일 잘 어울리는 향수는 조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조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다. 둘 다 나무 냄새를 베이스로 하고 있어서 가을의 숲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향수이기 때문이다.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은 가을의 숲을 걷다가 헤이즐넛 열매를 밟았을 때 날 법한 파삭한 냄새가 난다. 레드커런트는 같은 숲을 걷다가 레드커런트 열매를 따서 콱 깨물었을 때 날법한 냄새가 난다. 이렇게 가을스럽고 아름다운 향수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남성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레드커런트는 좀 더 여성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나무냄새가 강해서 남자 향수스럽다. ㅎㅎㅎ 그러므로 이를 보완하는 대책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레이어링! ㅎㅎ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합은 이 두 향수에 블랙베리 앤 베이를 더하는 것이다. 블랙베리 앤 베이도 사실은 중성적인 향수다. 싸하게 느껴지는 월계수 향 때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즙향이 제일 풍성하게 풍겨오는 향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스럽고 건조한 잉글리시 오크 시리즈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레드커런트와 레이어링 했을 때는 과즙향이 더 강해지지만, 역시 나는 헤이즐넛의 그 크리스프한 향이 더 좋다. 

2. 여름향수.

왜 계절별로 안 가고 여름 향수부터 얘기하느냐면.. ㅎㅎㅎ 아직도 날씨가 덜 선선하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공기가 선선해서 가을향수를 뿌리고 갔지만 낮에는 여전히 더워서 땀을 흘리면서 일했다. 여름 향수는 일단 절대 텁텁해서는 안 되는 것 같다. 베이비파우더 계열은 무조건 멀리해야 한다. 대신 시트러스 향을 가지고 있는 가벼운 향수들이 아마 시원하고 상큼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미 여기에 소개한 소장향수 중에서 제일 여름스러운 향수는 불가리 오 떼 베르. 은은한 차 향기와 너무 방방 뜨지 않는 시트러스 향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또 다른 하나는 프레쉬 브라운 슈가. 사실 프레쉬는 화장품 향이 덜 해서 좋아하긴 하지만 가끔 지나치게 가볍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기 때문에 여름 외의 계절에 뿌리기엔 적합치 않게 느껴지는 향수이기도 하다. 얼마전 브라운 슈가를 뿌리고 일하러 갔는데 킁킁 냄새를 맡으며 어쩐지 익숙한 이 향을 내가 어떻게 알고 있더라... 하고 생각해 보다보니... 약간 아이셔 사탕 냄새 ㅋㅋㅋㅋ 아무튼 달달하고 상콤한 이 향수는 여름에 가볍게 뿌리기에 딱이다. ㅎㅎ 모스키노 아이러브러브도 역시 같은 여름 향수 계열. 여름 향수들이야 무궁무진하게 많다. 

3. 겨울향수

겨울 향수는 날씨가 건조하고 추울테니 부들부들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향수가 좋을 것 같다. 베이비파우더 계열의 향수들이 아마 좋을 것 같다. 겨울이 오면 뿌리려고 벼르고 있는 향수는 역시 불가리 쁘띠 에 마망. 달달하면서도 파우더리하고 그러면서 살짝 우유냄새도 나는 쁘띠 에 마망은 이번 겨울 중에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에는 조금 적합치 않을 수도 있다. ㅎㅎ 하지만 뭐 어때! ㅎㅎㅎ 여름에 자주 뿌리지 못한 이 향수를 겨울에 뿌리면 어떤 느낌일까 하고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ㅎㅎㅎ 그 외에도 다른 베이비 파우더 향수들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 데메테르 베이비 파우더데메테르 퍼지 네이블 등도 아마 겨울에 뿌리면 좋을 것 같다. 그 외에도 또 생각나는 건 역시 달달함의 끝을 보이는 입생로랑 파리지엔느. ㅎㅎㅎ 두꺼운 캐러멜 냄새가 나는 이 향수도 여름보다는 겨울에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ㅎㅎㅎ 

4. 봄 향수

마지막으로 남은 봄향수. 봄은 사실 어느 향도 다 잘 어울리겠지만 봄의 설렘설렘한 느낌에 걸맞는 건 아무래도 꽃향기 풀향기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봄에 뿌릴만한 싶은 향수는 랑방 에끌라 드 아르페쥬 등의 복숭아 아이스티같은 향, 아니면 마크 제이콥스 데이지나 끌로에 시리즈 등 꽃향기가 나는 향수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조 말론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도 봄 향수로 분류하고 싶다. 잉글리시 페어의 시원함 때문에 여름에도 뿌리기 좋지만 짙게 남아있는 프리지아 잔향 때문에 어쩐지 꽃향기의 인상이 강한 향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사계절 뿌리게 되겠지만. ㅎㅎㅎ

겔랑에서 향수 샘플을 받았다. 겔랑이 화장품보다 향수로 먼저 시작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딱히 겔랑 향수는 맡아본 적도 별로 없고 관심도 별로 없었는데, 별 생각 없이 손목에 뿌렸다가 엇? 이거 좋은데?! 하는 느낌에 간만에 (진짜 간만에) 리뷰 시작. 

일단 향수 설명이 꽤 귀엽다. 향수 설명이 무려 "강기슭 잔디 위에서의 점심식사 (Luncheon on the grass on a riverbank). 톡 쏘는 과일을 꽉 깨물면서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biting into a tangy fruit. Listening to a birdsong)."고 되어 있다. 점심 식사가 오렌지였나 보다. 이런 설명을 보고 있으려면 웬지 순간을 담는다는 레플리카가 생각날 듯도 하다. 여튼 강기슭 잔디의 피크닉처럼 가볍고 즐거운 향수를 만들기로 작정한 것 같은 향이 난다. 이런 걸 보면 향수에 스토리를 담거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게 향수를 차별화하는데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탑노트는 만다린 오렌지를 꽉 깨물면 날 법한 향이다. 물기가 많이 포함된 싱그러운 오렌지 향이랄까. 미들노트부터는 오렌지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바질향이 올라온다. 남들도 그런가 모르겠는데 바질향은 나한테는 항상 비누냄새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랑방잔느의 비누냄새랑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같은 바질과 만다린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조말론의 라임, 바질 앤 만다린 (일명 라바만)과는 아예 향이 다르다. 조말론의 라바만은 처음부터 톡 쏘는 향이 강하고 시트러스와 바질 냄새가 동시에 난다면, 겔랑은 처음에는 오렌지향이 강해 바질이 느껴지지 않다가 미들노트부터는 오렌지가 아주 연하게 깔린 상태에서 바질향이 전체적으로 강하게 나고 전반적으로 굉장히 부드럽다. 베이스는 바질향이 사라지면서, 조금 가라앉기는 했지만 아주 무겁지는 않은 나무냄새가 난다. 은은하게 앰버향도 나서 향긋하다. 지속력은 약한 편인듯 하고, 탑-미들-베이스 노트로의 진행도 빠른 편인 것 같다. 

노트정보는 다음과 같다. 

탑노트 : 오렌지 블라썸, 비터 오렌지, 아이비, 그린트

미들노트: 카모마일, 만다린 오렌지, 바질

베이스 노트: 샌달우드, 앰버

아쿠아 알레고리아 컬렉션은 겔랑의 조향사 티에리 바세의 말에 따르면 '풍성한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일상의 기쁨'과 '정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만들어 낸 향수라고 한다. 그만큼 천연재료를 써서 자연에 대한 찬사를 표현했다고 하는데, 그런 점에서 조말론이랑 비슷한 점도 있다. (실제로 향수를 맡아보면 조말론보다는 확실히 더 쿰쿰한 화장품 냄새가 나기는 한다.) 그래도 기분좋은 향수임에는 틀림없다. 일상의 기쁨을 표현하고자 했다니, 그리고 그게 강기슭 잔디 위에서의 점심식사라니, 이 얼마나 밝고 경쾌한 향수인가. ㅎㅎㅎ 

가볍고 즐거운 향이라 딱 여름에 쓰기 좋은 향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겨울에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왜냐, 만다린 오렌지 냄새가 어쩐지 귤 냄새처럼 느껴지는데, 귤은 겨울에 나니까. .....아...아닌가? (뭐지 이 어정쩡한 결말은 ㅎㅎㅎ)

 

 

 

 



이렇게 괴상망측한 책은 처음 본다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책을 받았다. 바빠서 한동안 펴 보지 못하다가 이제야 시간이 조금 생겨 읽어보려고 책을 폈다가 당황해서 한참을 뒤적거렸다. 일단 제일 괴상한 점은 저자가 '곰돌이 푸'라는 점이다. 곰돌이 푸 자체가 실존하는 곰이 아닌데 저자가 곰돌이 푸라니. 

세상에 저자가 없는 책이라는 건 없다. 옛날 책을 새로 편집해서 내는 일은 있어도 원저자와 편집인의 이름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봐도 저자가 없었다. 샅샅이 뒤져서 겨우 찾아낸 것이 그나마 '옮긴이'의 이름이다. 이것도 참 괴이하다. '옮긴이'라는 것은 원저가 있는 것을 다른 언어로 옮겼을 때에나 쓰는 말이지, 대체 뭘 옮겼다고 옮긴이? 푸가 한 곰의 말을 사람의 말로 옮겼다는 건가 뭔가. 

굳이 저자를 '곰돌이 푸'라고 하려면, 사실상 푸의 저자 밀른의 책에 나온 푸의 말들을 직접 인용하는 방법도 있긴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저자는 곰돌이 푸가 아니라 밀른이 될 것이다). 그런데 내용을 들여다 보면 푸가 책에서 한 말이랑은 전혀 관계없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푸가 한 말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머리말에서 한 구절, 중간에 나오는 간지에나 잠시 나올 뿐, 푸가 등장하는 건 페이지마다 있는 삽화밖에 없다. 그러니까 대체 어딜봐서 저자가 곰돌이 푸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 대체 이 내용들은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알 수가 없다. 

괴상망측한 것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머리말을 읽어보면, 갑자기 난데없이 푸우가 '논어'를 만났다고 한다. 읭? 이렇게 난데없이? 부제에도 없던 논어는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건가? 게다가 푸우가 대체 논어랑 무슨 상관인지. 머리말은 말한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경전의 혜안을 [그러니까 논어를] 푸의 목소리를 빌려 얘기하는 거라고.그렇다면 이 책은 논어를 푸의 캐릭터를 활용해 귀엽고 쉽게 풀어 쓴 책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일단 원저자는 공자여야 한다. 그리고 논어에 나오는 구절의 원문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어느 책의 무슨 편에 있는 이야기인지 인용이라도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페이지를 이쁘게 꾸미느라 원문이나 각주를 넣기 싫었다면 맨 뒷 페이지에라도 서지사항이라도 나와야지, 공자에게 마땅한 지적 크레딧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하긴 저자도 자기를 옮긴이라고 하며 뒤로 숨는 판에, 공자인들 자기가 이 책의 컨텐츠의 원저자라고 하고 싶었겠나. 나오는 내용의 예시를 들어 보자면...

"많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내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는 아무리 노력하고 고민해도 정말 중요한 걸 놓치기 쉽답니다. 내 마음을 먼저 돌아보세요."

"완벽한 사람을 꿈꾼다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180도 바뀌기는 힘들 거예요.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끔 작은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정말 간절히 바라며 계속 노력한다면 내가 바라는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 줄어들 거예요."

정말 괴이한 것은, 이딴 추상적인 얘기만 페이지 빼곡히 늘어놓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점이다. 대체 왜?!?!?! 그림이 예뻐서? 아니면 정말 이 추상적인 말들이 힐링이 되어서? 책 구성이 예뻐서? 유치원에 온 것 같아서? 


푸 원전 덕후에게는 다소 아쉬운 디즈니 삽화

이 책을 내게 준 사람은 단순히 이 책이 베스트셀러이고 내가 곰이기 때문에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모르고 있었던 것은... 내가 사실 푸의 덕후라는 것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푸를 접하기 훨씬 오래 전 나는 푸를 책으로 접했다. 밀른의 책을 번역했던 계몽사 문고의 '곰 푸우'에는 원저에 있던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의 삽화가 그대로 옮겨져 있었는데, 디즈니의 그림들보다 모든 캐릭터들이 훨씬 더 민둥민둥하고 단순해서 귀여웠다. 푸와 피글렛도 더 디즈니보다 민둥민둥하지만, 그 민둥한 귀여움이 폭발하는 것은 티거의 삽화에서다. 어쩐지 켈로그 호랑이를 떠올리게 하는 디즈니의 티거와 달리 셰퍼드의 티거는 딱 봐도 푸의 친구인 티거의 모델이 그냥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이 인형이었다는 것을 더 잘 보여준다. 이요르도 마찬가지다. 당나귀 이요르가 잃어버렸던 꼬리를 못으로 박아주는 장면은 이요르가 인형이라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러한 민둥성(?) 혹은 '인형성(?)' 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사라진다. 즉, 원저자라는 곰돌이 푸는 심지어 밀른의 푸가 아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푸였던 것이다.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의 푸 삽화 어니스트 하워드 셰퍼드의 티거 


동화 덕후의 뒷조사 탐방 

그런면에서 본다면 동화 덕후가 동화작가들의 뒷조사를 하여 만든 <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은 충분히 독자의 덕후력을 상승시킬만한 요소들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내가 열심히 읽었던 동화들의 주인공들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는가, 저자는 어디에서 모티프를 얻어 이런 동화를 쓰게 되었는가, 이 동화들이 반영하고 있는 시대상은 무엇인가, 저자의 삶은 어떻게 반영되었는가, 책의 성공은 저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작은 아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톰소여의 모험, 피터팬, 보물섬, 빨강머리앤, 하늘을 나는 교실, 안데르센 동화집, 그리고 푸에 이르기까지 어렸을 적에 스무번도 넘게 읽었던 동화들을, 저자는 하나씩 시대적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맞춰서 자리매김 시킨다. 작은 아씨들에서 남북전쟁에 나갔던 건 조의 아버지가 아니라 조의 실제 모델이었던 루이자 메이 올콧이었다던가, 보물섬이 이미 해적 시대가 지난지 100년쯤 지나 그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생겨날 무렵에 쓰인 것이라던가,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에 나타난 인젼조에 대한 인종주의적 묘사라던가. 심지어 이 저자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마크 트웨인 소설의 출판을 맡고 있던 조카사위 찰스 웹스터가 출판사 파산으로 자살하자 딸인 진 웹스터는 고아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게 <키다리 아저씨>라던가 (p.110-111), 피터팬을 쓴 제임스 매슈 배리가 가장 좋아한 작품이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철들기를 거부하는 헉의 모험을 보며 피터팬 캐릭터를 구상했다던가 (p.134), 보물섬의 삽화를 그린 월터 패지트는 그 동생 시드니 패지트가 <셜록 홈즈> 삽화를 그릴 때 모델이 되었다던가 (p.152), <빨강머리앤>을 쓴 루시 모드 몽고메리에게 마크 트웨인이 팬레터를 보냈다던가 (p. 193) 하는 얘기들 말이다 

푸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글들에 힐링이란 외관만 덧씌운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와 달리, 이 책은 실제로 푸의 어떤 점이 힐링을 주는 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장면을 들어 설명한다. 

푸의 집과 피글렛의 집 중간쯤에는 가끔 서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가서 만나는 '생각하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날씨도 따뜻하고 바람도 없는 날에는 거기에 함께 잠시 앉아서, 만났으니 이제 뭘 해야 할까 궁금해 하곤 했습니다. (p.294)

어느 날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모든 사람이 이 장소가 왜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푸가 시를 지었습니다. (p. 295)

이 몇 문장의 직접인용만 봐도, 푸가 가지고 있는 힐링의 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덕후답게 푸가 주는 힐링의 포인트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낸다. 구멍에 낀 푸를 꺼내기 위해 모든 친구가 힘을 모으는 장면이라던가, 꿀을 먹기 위해 구름인 척 풍선을 들고 하늘로 떠올랐다가 내려오지 못하는 푸라던가, 티거와 푸가 함께 발자국을 추적하느라 몇바퀴를 똑같은 길을 돌았는데 알고보니 자기들의 발자국이더라 하는 에피소드들. 일상성에서 오는 사소한 행복감과 그저 존재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친구들의 친밀성. 아마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가 쌩뚱맞은 논어 이야기를 하는 대신, 원전에서 푸가 했던 말들을 몇 개만 추려 인용했어도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힐링을 얻었을 것이다. 원저자가 곰돌이 푸라는 것도 조금 더 납득할만 하고. 


동화를 동심의 세계에서 구출하기

넷플릭스에서 최근 Anne with an E 라는 캐드(캐나다 드라마?)를 방영하였다. 시즌 2까지 나오면서 원작에서 서서히 멀어지긴 했으나, 시즌 1까지는 원작에 나왔던 에피소드를 적절하게 배치한데다가 앤, 다이아나, 매튜, 마릴라 등의 캐릭터를 최대한 원작에 가깝게 살려냈다. 1시즌 1화를 처음 본 순간, 책으로 앤을 접한 모든 이들은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빨강머리 앤이랑 똑.같.이 생겼다고. 말라깽이에 주근깨, 창백하다시피 하얀 얼굴에 반을 차지하는 큰 눈, 상상과 현실 어드메쯤을 헤메고 있는 눈빛, 쉴새없이 조잘거리면서 놀라운 표현들을 드라마틱하게 뱉어내는 앤. 고증에 충실하게도 Anne with an E는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 직접 가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동화를 현실처럼 구현해 내고자 한 것이었다면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텐데, 이 드라마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넷플릭스 캐드 'Anne with an E'

앤이 실제로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 살고 있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에 대한 고민을 제작진은 엄청 많이 했을 것이다. 앤이 고아로서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 왔을 때 겪어야 했을 편견과 차별, 그 커뮤니티 안에 속하기 위해 했어야 했을 노력들까지를 Anne with an E는 세세하게 그려낸다. 다이아나의 엄마가 다이아나와 앤을 못 놀게 했던 것은 단순히 딸기주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렸을 때  그저 스토리로서 읽을 때는 단순히 베프인 다이아나와 못 놀게 된 것이 아쉽고 가슴 아팠다면, 현실적인 맥락에 앤을 위치시키고 나니 그런 에피소드 뒤에 있었을 배경이 보인다. 덕후 제작진은 아마 그 뒷배경을 열심히 생각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앤의 초경도 마찬가지다. 원작에는 앤이 11살이고 캐드에는 13살로 나오지만, 앤도 분명 초경을 겪었을 것이다. 충격도 받았을 것이고 드라마에서처럼 마릴라에게 설명을 들었을 것이다. 발랄하면서도 우울하기도 하고, 과장된 언어를 사용하고, 드라마퀸인데다가 징징거렸다가 금방 들뜨기도 하는 성격이지만, 동시에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해서 몸에 밴 성숙함도 있는 캐릭터가 앤이다. 다이아나의 동생 미니메이의 후두염을 간호한다던가 하는 모습에서 그런 면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성숙함의 배경에는 분명 '고생'이 있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굳이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 고생. Anne with an E는 거기까지 파고든다. 그래서 앤이 어린 나이에 겪었을 정신적 육체적 학대까지 그려낸다. 이것은 앤의 독특한 성격 - 상상력이 유달리 풍부하고 현실을 떠나 꿈 속에 있는 것 같은 - 에 맥락을 부여한다. 즉, 앤이 만들어내는 상상과 환상의 세계가, '고생'을 견디기 위한 방어기제로서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쯤 되면 빨강머리앤의 팬들 - 특히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팬들 - 은 '이건 나의 앤이 아냐!' 라고 충격과 공포에 빠져든다. 그러나 애니메이션보다 책을 수십번쯤 읽었던 원전 덕후로서, 나는 오히려 이 드라마가 앤 이야기에 현실적인 맥락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동화가 그저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아름다운 것으로만 남길 바란다면, 동화는 아마 아름다운 채로 어린 시절의 추억 속에 아우라를 뿜으며 그대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화를 현실의 반영으로 읽기 시작한다면, 동화는 여전히 내 현실과 일상과 세계 속에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된다. 내가 사랑했던 동화들은, 그 동심의 아우라 속에서 빠져나왔을 때도 충분히 보석처럼 빛난다. 사람들마다 각기 다른 선택을 하겠지만, 나라면 보석처럼 내 일상의 지금 이순간에 빛나고 있는 그 동화들을 붙잡겠다. 

갑자기 넷플릭스의 캐드 얘기를 해서 당황스럽겠지만, 이 책도 사실 같은 맥락의 책이다. 우리가 수십번씩 읽었던 그 책이 작가의 어떤 삶을 반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자식을 학대하다시피 했던 올콧의 아버지나, 앤 시리즈를 그 딸인 릴라 이야기까지 써야했던 몽고메리, 피터팬의 모델이 된 소년의 비참한 말로, 톰소여의 인종주의와 안데르센의 리플리 증후군이 그 동화들이 가지고 있던 동심의 아우라를 흐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가들의 비루하다면 비루한 삶을 통해서도 이런 동화가 만들어지고, 그 동화가 또 후대에 두고두고 읽히며 나에게까지 닿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의 현재의 비루한 현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내 비루한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동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내게는 힐링이다. (곰돌이 푸인 척 하는 공자가 늘어놓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힐링이 아니라 이게 힐링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정말 안데르센의 컴플렉스인가요?

미운 오리 새끼는  제목에 무려 '새끼'가 들어가는 어린이에게 다소 적합치 않은 제목을 가진 안데르센의 대표작이다. 어렸을 때는 그저 아 놀림받던 미운 오리가 백조가 되다니 정말 잘 됐다 정도로 생각했다면, 크면서는 점점 많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내게 미운 오리 새끼는 남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놀림받는 존재다. 백조 새끼가 딱히 오리 새끼보다 더 못생겼을 이유도 없건만, 다른 오리 새끼들이 백조 새끼 (아니 미운 오리)를 따돌리는 이유는 그저 다르게 생겼기 때문이다. 백조 새끼는 어떻게든 오리들의 세계에 끼어들기 위해 그들을 따라다닌다. 그런데 오리들의 기준은 백조와는 다르다. 아무리 백조가 노력해도 오리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백조인데도 불구하고 오리들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려고 했던 백조 새끼는 결국 자기가 백조라는 걸 알게 된다. 오리들과는 다르게 살도록 디자인 된 백조라는 정체성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미운 오리 새끼>는,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놀림받고, 남들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깎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던 수많은 백조새끼들이, 자기만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기 삶을 살기 위해 날아오르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저자는 이게 안데르센의 컴플렉스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안데르센은 자기가 귀족의 자제이며 천재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고 하는데 (그런데 천재는 맞는 거 아닌가? 미운오리 새끼도 그렇고 성냥팔이 소녀도 그렇고 벌거벗은 임금님도 그렇고 이 정도면 난 놈이지), 미운 오리가 딱 그렇다는 것이다. 오리새끼가 따돌림 당하는 이유는 못생겼기 때문이고, 오리 새끼는 외모지상주의 세상의 가치관을 본인도 받아들이며, 고난의 극복도 주인공의 별다른 노력도 없이 알고보니 백조였다는 식으로 결말이 나는데, 이것은 안데르센이 가진 '나는 애초에 귀한 혈통을 가진 존재인데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과 지내다보니 인정받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한 것이다'라는 안데르센의 무의식이 반영된 거라는 것이다. 저자의 뒷배경을 아는 것은 종종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저자의 삶이 '컴플렉스'라는 한 마디로 정의될 수 없듯이 그의 작품도 그의 독특한 기행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삶과 책의 내용을 연결짓기 위해 작위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아닌가 한다. 이는 <벌거벗은 임금님>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인데, 저자는 안데르센의 열등감과 천재라는 자신감, 불안감과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가, 벌거벗었음에도 행진을 계속하는 왕의 캐릭터를 통해 나타나며, 귀족들이 자신들의 지위에 걸맞은 지혜를 갖추지 못하고 멍청하다는 사실을 까발렸다고 한다. 신선한 해석이야 언제든 환영이지만, 역시 작위적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저자는 안데르센에 대한 전기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안데르센이 전형적인 아웃사이더이자 비천한 배경, 불확실한 성정체성,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웠으며 못생긴데다가 눈치도 없는 사람이었고, 그가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안데르센을 너무 쉽게 프로파일링 해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웃사이더라면 누구나 비참한가? 제대로 된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한 사람들이 평생 독신으로 사는 건가? 친구집에서 머무르다가 그 친구 부부와 함께 묻히고 싶다는 유언은 오히려 그 친구부부와의 친밀감을 보여주지는 않는가? 벌거벗은 임금님도 사실은 모두가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할 때 혼자 보이는 대로 사실대로 말한 소년으로 인해 금기가 깨지는 통쾌함에 대한 얘기가 될 수는 없는 걸까.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해도 좋다는, 비주류여도 괜찮다는, 비주류의 거친 시각이 때로는 주류가 눈감고 있는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는, 그런 이야기로 해석될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안데르센을 '비주류의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누가 봐도 사회의 비주류였던 그와 그의 고통을 그저 비참한 컴플렉스의 화신으로 치부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시각이 조금 불편하다. 마이너리티는 분명 매저리티가 볼 수 없는 시각으로 사회를 바꿔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키다리 아저씨도 써 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즐겁다. 왜냐하면 덕후가 자기가 덕질하는 것들을 눈빛 빛내며 설명할 때 느껴지는 그 매력이 책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키다리 아저씨>에 나온 아저씨가 알고보니 사회주의자였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충격은, 단순히 충격이 아니라 설렘이기도 했다. 오- 그렇게 내가 알고 있던 역사와 연결되는구나- 하는 기쁨이기도 했고, 마치 별세계 얘기와 같았던 주디의 이야기를 그 시대적 맥락에 위치시킬 때 현실감이 반짝반짝 살아올랐기 때문이다. 우울한 수요일과 주디가 그린 삽화로 시작하는 그 즐거운 책의 뒷배경을 더 알고 싶다. 어디 <키다리 아저씨> 뿐이랴. 메리 포핀즈를 쓴 트래버스의 이야기도 꽤나 드라마틱하고 (그 뒷이야기가 Saving Mr. Banks라는 영화로 나왔는데, 사실왜곡과 디즈니 미화가 심하다고 말이 많았다), 어린 왕자라던가, 책에도 언급되었던 에밀과 탐정, 어렸을 때 사랑했던 동화는 정말 무궁무진한 꿀잼 확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키다리 아저씨를 머리말에 언급했으니, 아마 이 책이 성공하면 다음 책도 내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며. 오늘의 주절주절 길기도 한 리뷰는 여기서.... 


끗.




1. 불가리 오 떼 베르

전반적으로 시원한 향이라서 여름에 쓰기 좋은 향수다. 세련되고 은은한 향이다. 

첫 향의 시트러스 향은 다른 레몬향들처럼 톡톡 튀지 않고, 대신 쌉싸름한 냄새가 무게감을 잡아줘서 은은하고 잔잔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얼마전 면접 보러 갈 때 이 향수를 살짝 뿌렸다. 도시적인 느낌의 얌전한 향수다.

2018/03/30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12) 녹차 냄새가 나는 향수 - 불가리 오 떼 베르



2. 조 말론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조말론 향수들은 다 똑같이 생겨서...ㅎㅎㅎ 사진을 올려봤자 ㅋㅋㅋ 

아무튼 여름에 좋은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첫 인상은 그냥 무난하다고만 생각했지만, 의외로 몇달 지나니 자주 뿌리게 되는 향수다.

첫향에서는 서양배 향이 강하고, 뒤로 갈 수록 프리지아 향이 세지는데, 시원한 느낌이 드는 건 서양배 향 때문인 것 같다. 살짝 쌉쌀하고 시원한 느낌. 

레이어링을 이거저거 해 봤지만, 다른 향수랑 레이어링 하는 것보다는 그냥 이거 하나만 쓰는 게 좋은 것 같다. 

2018/03/14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7) 내가 좋아하는 향과 나에게서 났으면 하는 향이 다를 때 - 조 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3. 프레쉬 브라운 슈가 오 드 파퓸


리뷰한지 얼마 되지 않은 브라운 슈가. 상큼 달달하므로 기분전환에 좋지만, 면접을 보러가거나 할 때는 삼가하는 게 좋다. ㅎㅎ 

상큼 달달 시원한 느낌이라서 여름에 발랄한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좋을 것 같은 향수. 어디 놀러가거나 바람쐬러 가거나 할 때 좋을 것 같은 향수다. 

2018/05/28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19) 독하지 않고 말 그대로 프레시한 상큼달달 향수 - 프레쉬 브라운 슈가 오 드 파퓸





최근 친구의 결혼 선물 등으로 조말론 매장을 몇번 들락거리다 보니 이제 웬만한 조 말론 향들은 다 맡아본 것 같다. 처음 맡은 향들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조 말론은 다 좋은 줄 알았는데, 가서 맡아 보고 샘플을 얻어와 뿌려보고 하다보니 꼭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결국 내가 좋아하는 향들이 뭔지 알아냈고, 나머지에 대한 욕심이 없어지면서 조 말론 및 향수에 대한 관심이 뚝 식어버리고 말았다. (?!) 하지만, 친구의 결혼선물 및 내 자신에게 주는 선물(?!) 등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여러 샘플을 갖게 되었다. 그 중에 예전에 리뷰한 적 없던 두 향, 조 말론 얼그레이 앤 큐컴버조 말론 피오니 앤 블러시 스웨이드 두 향을 리뷰해 보려고 한다. 둘 다 매장에서 맡아보고 나쁘진 않지만 또 그렇게 좋지도 않다...라고 생각했던 향이다. 

조 말론 피오니 앤 블러시 스웨이드 (Jo Malone Peony and Blush Suede)


조 말론 피오니 앤 블러시 스웨이드는 물이 많이 섞인 꽃향기이다. 꽃 중에서도 달달한 향이 많이 나는 꽃. (아마도 피오니인 것 같다. 피오니는 작약).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꽃향기 느낌이라서 무난히 사랑받을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향이 평범하진 않다. 꽃 향기 너머로 생일 초 불어서 끄자마자 나는 약한 탄내가 느껴진다..(대체 왜?!;;; 하지만 진짜다, 맡아보셈) 조 말론 향수 중에서도 꽤 인기가 많은 향이라고 들었는데, 소녀시대 써니가 뿌렸다나 뭐라나. 물이 많이 섞인 향이라서 잘못 맡으면 약간 울렁거릴 수도 있다. 탑노트는 사과라는 데 전혀 사과향은 모르겠다. (내가 막코라서 그럴 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대부분 스쳐 지나가듯 향수를 맡는 일반인들은 막코니까 괜찮다 ㅎㅎ) 스웨이드 향은 노트 설명에도 그렇고 다른 리뷰에도 그렇고, 실제로 스웨이드 냄새라기보다는 그런 질감이라는 뜻에서 넣은 듯 하다.


조 말론 얼그레이 앤 큐컴버 (Jo Malone Earl Grey and Cucumber)

얼그레이 앤 큐컴버는 솔직히 내 코에는 오이 같지도 않고 홍차 같지도 않다. 시트러스 계열로 분류되어 있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솔직히 시트러스 향 같은 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약간 스파이시한 느낌의 머스크한 향이 첫 향부터 강하다. 시원하다기 보다는 따뜻한 향인 것 같다. 탑노트에서 강하던 머스크가 뒤로 가면 조금씩 사라지고, 그제서야 버가못 향이 좀 나기 시작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런 향이 살짝 나면 세련된 느낌이 들 것 같긴 하다. 역시 나쁘진 않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이제 있는 조말론 향수 샘플들을 가지고 레이어링을 해 보자.


조말론의 프래그런스 컴바이닝에 나와있는 가이드에 따르면 얼그레이 앤 큐컴버 레드 로지즈랑 레이어링을 하도록 권하고 있어서 한번 해 보았다.결과는 역시 그냥 그렇다. 레드 로지즈의 톡 쏘는 향이 너무 강해서, 그게 얼그레이 앤 큐컴버의 강한 머스크향과 함께 역시 코를 찌른다. 그러나 어쨌거나 조 말론은 레이어링을 하면 무조건 좀 더 풍성해지기는 하는 것 같았다. 향긋한 느낌이 조금 더 살아나긴 한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조 말론에서는 이런 조합을 나름 싱그럽거나 신선함이 더 살아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 레드 로지즈 미안하지만 정말 너는 내게는 아무짝에도 쓸 데가 없구나.

역시 조말론 웹사이트의 조언에 따라 피오니 앤 블러시 스웨이드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와 레이어링 해 보았다. 여전히 피오니 향이 강하게 나긴 하지만 그래도 싸한 잉글리시 페어 향이 더해지니까 향이 더 시원해지고 달달한 향이 좀 더 살아난다. 나쁘지는 않은 조합인 듯 하다. 피오니 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것도 좋아할 수도. 개인적으로는 피오니 향이 아무래도 타다남은 양초 같아서 별로다.. ㅎㅎㅎ 


피오니 앤 블러시 스웨이드우드 세이지 앤 씨 쏠트 역시 조말론에서 권장하는 조합이다. 우드 세이지 앤 씨 쏠트는 사실 다른 향수들이랑 조합하기에 꽤 좋은 향인게 전반적으로 단조로우면서도 자몽향 같은 과일향이 살짝 돌고 있어서, 과일향이나 꽃향이 나는 다른 향수랑 뿌리면 과일향을 확 풍성하게 해준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블랙베리 앤 베이랑 특히 잘 어울린다. 그런데, 피오니랑은 정말 왜 권장 조합인지 모르겠을만큼 따로 노는 것 같다. 오히려 우드 세이지 씨 솔트에 있는 자몽향 보다는 소금향이 확 오는데, 그러다보니... 생일초 타다 남은 데 소금 뿌린 것 같은 향이 난다;; ㅎㅎㅎ 물론 주관적인 평이지만...ㅎㅎㅎ 아무튼 이 조합도 내 취향은 아닌 걸로. ㅎㅎ


어쨌거나, 현재로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 말론 조합은

블랙 베리 앤 베이 + 우드 세이지 앤 씨 쏠트 (일명 블베베+우세솔 조합)

블랙 베리 앤 베이 +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일명 블베베 + 잉오레 조합) :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보다 레드커런트가 훨씬 더 블베베와 잘 어울린다. 아마도 레드커런트에서 나는 과일향을 블베베가 풍성하게 살려줘서 그런 것 같다. 

이다..

그리고 단독으로 뿌리기에 제일 좋아하는 건 여전히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 넛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블랙 베리 앤 베이 

이렇게 네 가지. ㅎㅎ 아마 한동안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조말론에 대한 예전 포스팅은... 

2018/04/05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16) 역시 요즘 최고의 장난감 - 조 말론 향수들을 레이어링 해 보자

2018/04/03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15) 조 말론의 다른 향들이 궁금해졌다 (2) - 조 말론 라임 바질 앤 만다린, 미모사 앤 카다몸, 레드 로지즈, 벨벳로즈 앤 우드, 튜버로즈 안젤리카

2018/04/01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13) 조 말론의 다른 향들이 궁금해졌다 - 조 말론 다크앰버 앤 진저 릴리, 블랙베리 앤 베이,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2018/03/14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7) 내가 좋아하는 향과 나에게서 났으면 하는 향이 다를 때 - 조 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프레시 브라운 슈가 오 드 파퓸 (Fresh Brown Sugar Eau de Parfum)


  • 탑 노트: 시칠리안 레몬(Sicilian Lemon), 탠저린(Tangerine), 아싸이(Açaí)
  • 하트 노트: 달콤한 매그놀리아(Sugared Magnolia), 은은한 허니서클(Sheer Honeysuckle), 복숭아 넥타(Peach Nectar)
  • 베이스 노트: 카라멜(Caramel), 웜 엠버(Warm Amber), 사이프러스(Cypress)


사실 조 말론에 한참 빠져든 이후 다른 향수들이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말론의 자연적이고 담백한 향들에 비해서 다른 향수들은 대개 좀 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새로 눈에 들어온 향수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프레시 브라운 슈가였다. 예전에 Sugar Rose향 립밤 같은 걸 선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향이 마음에 들어서 프레시를 기억하고 있었고, 얼마전 친구와 매장에 갔을 때 이거저거 향을 맡아보았다. 프레시 향수들은 전반적으로 이름 그대로 'Fresh'하다. 가볍고 상큼한 과일향 꽃향이지만 인위적이거나 독하지 않고, 달달한 느낌은 있지만 지나치게 달지는 않았다. 가서 캐나비스 로즈, 슈거 리치 등의 향도 맡아 보았는데, 전반적으로 오 상큼한데?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유달리 브라운 슈가가 마음에 들었다.

브라운 슈가는 이름만 들으면 엄청 달달할 것 같다. 베이스 노트에도 '카라멜'이 들어 있어서 더욱 그럴 것만 같은데, 의외로 별로 달지 않고, 오히려 상큼한 느낌이 강하다. 신선하게 잘 익은 과일 향이라고 해야 하나. 전반적으로 복숭아 아이스티 같은 향이다. 첫향에서는 레몬 향이 강하지만, 그렇게 가볍지 않고 살짝 묵직한 시트러스 향이다. 노트에는 없지만 나는 버가못 향이랑 비슷하다고 느꼈다. 자몽이랑 복숭아향도 나는 것 같다. 미들노트에 나와있는 허니서클은 원래 아주 달착지근한 향이 나야 하는데, 이 향수에서는 허니서클 향이 나는지도 잘 모르겠을 만큼 약하다. 카라멜 향도 거의 나지 않는다. 오히려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베이스노트는 비누향 같은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상큼한 느낌의 향수다. 봄여름에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랑방 잔느나 에끌라 다르페쥬랑도 비슷한 느낌의 향수지만, 랑방보다 훨씬 덜 독하고 더 자연에 가까운 향이 나고, 랑방보다 좀 더 상큼한 느낌이 강하다.



동생네 갔을 때 동생이 가지고 있는 샘플들을 모조리 부어주는 바람에 샘플을 한 스무개쯤 들고 돌아온 것 같다. 동생도 본인이 좋아하는 걸 수집한 게 아니라 뭐 어디 사은품으로 나눠준 것이기도 하고, 나도 내 취향대로 모은 게 아니라서 종류가 아주 뒤죽박죽이다. 남자 향수도 많이 섞여있고, 여전히 향알못인 내게도 벅찰만큼 내 스타일이 아닌 향수들도 섞여 있어서 나름 소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여튼, 오늘의 향수는 동생이 마음에 들었던 건지 샘플을 무려 네개나 모아놓아서 궁금한 김에 뿌려본 돌체 앤 가바나의 돌체 우먼 EDT

돌체 앤 가바나 돌체 우먼 오 드 뚜알렛 (Dolce and Gabbana Dolce Woman Eau de Toillet)

돌체 우먼. 오이 냄새에 멜론 냄새가 섞인 것 같은 향이 난다. 시원한 것 같긴 한데 독하진 않은 편이다. 노트 정보를 보면 

탑노트: 네롤리, 파파야 플라워

미들노트: 화이트 아마릴리스, 수선화, 수련

베이스 노트: 머스크, 샌달우드

...라고 하는데 사실 하나도 모르겠다. 그냥 나한테는 오이 냄새 ㅋㅋㅋ 잔향이 약한 것 같다. 


동생이 모아놓은 돌체 우먼 샘플들 ㅎㅎㅎ


향수 미니어쳐를 모으는 것을 알고 있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선물로 안나수이 향수 미니어쳐 세개를 주었다. 이제 미니어쳐는 그만 모으기로 했지만, 그래도 기억하고 챙겨준 친구의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기쁘고 감사하게 받았다. 친구에게 받은 향수는 안나수이 플라이트 오브 팬시, 안나수이 포비든 어페어, 안나수이 페어리 댄스.  셋 다 나름대로 유명한 향수들이라 궁금하긴 했다. 

친구한테 받고 나서 시향해 보려고 책상 위에 두고도, 한 동안 조말론 레이어링에 빠져 있었던 지라 건드리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한 손에는 플라이트 오브 팬시를, 다른 손에는 포비든 어페어를 뿌리고 일하다가...... 멀미가 나서 .... 버티다가 결국 손을 씻으러 다녀오고 말았다. 둘 다 나름대로 향이 강한 향수라서 함께 맡으니까 정신이 오락가락. 본의 아니게 레이어링. 나중에 좀 컨디션 괜찮을 때 하나씩 다시 시향해 봐야겠다. 

안나 수이 플라이트 오브 팬시 (Anna Sui Flight of Fancy)

안나수이 플라이트 오브 팬시. 이름 뜻을 굳이 번역하자면 '상상의 나래'쯤 되겠다. 달콤한 향이 첫 향에 훅 치고 들어오고, 뒤로 갈 수록 점점 더 부드럽고 파우더리 해지고, 약한 머스크 향으로 바뀐다. 복숭아 향 같은데 랑방 에끌라 드 아르페쥬랑 비슷한 느낌인데 조금 더 단 향이 강한 것 같다. 그리고 랑방과 달리 살짝 뒷골이 땡기게 하는 둔탁한 단향이 있다. 미니어쳐 바틀은 오리지널이랑 비슷하게 만든 것 같다. 안나수이는 향수병이 독특하고 예쁘기로 유명한데, 미니어쳐는 그 디테일을 다 플라스틱 뚜껑으로 처리해버리니 어쩐지 디자인은 좀 아쉬운 느낌이다. ㅎㅎ 그래서 사진이라도 좀 드라마틱하게 찍어보았다. 


안나 수이 포비든 어페어 (Anna Sui Forbidden Affair)

안나수이 포비든 어페어. 금지된 사랑이라니. 이름이 너무 도발적인 거 아님? ㅎㅎㅎ 그런데 향냄새는 의외로 그렇지가 않다. 대체 이게 어딜 봐서 금지된 사랑인지 모르겠는데, 전반적으로 훅 치고 들어오는 꽃냄새, 거기에 잔뜩 섞인 물냄새. 얼핏 레플리카 플라워 마켓이랑도 비슷한 농도로 물냄새가 섞인 것 같다. 그래도 바틀이 예쁜 것 같다. 비록 뚜껑은 플라스틱 싼티가 나긴 하지만, 포비든 어페어라는 이름은 바틀 앞에, 금지된 사랑을 하고있는 남녀 그림이 바틀 뒷면에 있어서 각도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글자와 그림이 겹쳐 보인다. 아마 진짜 향수병은 훨씬 더 예쁠 듯. 


안나 수이 페어리 댄스 (Anna Sui Fairy Dance)

안나수이 페어리 댄스. 시크릿 위시라고 뚜껑에 써 있어서 처음에는 헛갈렸는데 찾아보니 비슷하게 생겼지만 색깔이 다르다. 요정의 춤이라는 이름답게 향도 밝고 부들부들하고 달달하고 은은하다. 전반적으로 열대과일향 같은데 장미향도 조금 나는 것 같고, 전반적으로 파우더리한 느낌이 있는데 뒤로 갈 수록 바닐라 향이 진해진다. 시원한 향이라기보다는 따뜻한 향이라서 어쩐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내 취향에 비해 너무 달다. 


취향도 없던 향알못 시절에서 빠져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새콤 달콤 꽃냄새 물냄새 풍기는 향들이 이제는 가끔 좀 힘들다. 특히나 요즘처럼 조 말론의 은은한 나무냄새 잔잔한 허브냄새 같은 것에 빠져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뇌를 압박해 오는 꽃냄새는 머리가 아프고, 거기 섞여있는 물냄새는 멀미를 일으키기도 한다. 나도 취향이라는 게 생겨버린 것일까! 아무튼 선물을 준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안나수이는 적어도 당분간은 내 취향이 아닌 걸로. 

얼마 전에 얻어온 조 말론의 향수 샘플들이 소위 조 말론의 시그니쳐 향이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나한테는 별로라서, 조 말론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구나 하고 시무룩하던 차에, Fragrance Combining 이라는 신세계를 알게 되었다. 조 말론은 애초에 제품을 출시할 때 다른 향들과 조합을 하는 것을 전제로 여러번의 레이어링 테스트를 거쳐서 출시한다고 한다. 즉 시그니쳐 향이라던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이나 미모사 앤 카다몸,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같던 것들이 그 자체로만이 아니라 레이어링을 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우드 세이지 씨쏠트가 오해할까봐 하는 말인데,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는 괜찮았다. 자몽향이랑 부드러운 허브향, 음 괜찮았어.) 동생이 가지고 있는 넥타린 앤 블로썸도 맡아봤을 때 너무 약한 플로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다른 향들이랑 조합해서 많이 쓰는 향수인 모양이다. (그런데 동생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단호하게 '상술'이라고...ㅎㅎㅎ)

지난 포스팅을 보려면 클릭

2018/03/14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7) 내가 좋아하는 향과 나에게서 났으면 하는 향이 다를 때 - 조 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2018/04/01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13) 조 말론의 다른 향들이 궁금해졌다 - 조 말론 다크앰버 앤 진저 릴리, 블랙베리 앤 베이,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2018/04/03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15) 조 말론의 다른 향들이 궁금해졌다 (2) - 조 말론 라임 바질 앤 만다린, 미모사 앤 카다몸, 레드 로지즈, 벨벳로즈 앤 우드, 튜버로즈 안젤리카


아무튼 며칠전 블랙베리 앤 베이를 사러 조 말론 매장에 갔을 때, 마치 토이저러스에 온 어린애처럼 신나 킁킁거리던 내 앞에 딱 버티고 서서 '조 말론 처음이니? 넌 무슨 향을 좋아하니? 뭐 궁금한 거 없니?' 하면서 못살게 굴던(?) 직원 언니에게, 대답을 하긴 해야할 것 같아서, '응 난 원래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을 좋아해, 근데 오늘은 블랙베리 앤 베이가 궁금해' 라고 했더니, 언니가 '그 두 향이 원래 레이어링 하면 잘 어울리는 향이야' 라고 하면서 시향지 두개에 각각 뿌린 후 수맥 찾는 기기처럼 양 끝을 꺾어서 내게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응? 괜찮당?!? ㅎㅎㅎ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은 아름다운 숲의 냄새지만 (요즘은 이 향이 제일 좋아서 편애하는 중이다 ㅎㅎ) 남자스킨 같은 면이 있어서 동생이 40대 아저씨 향수 같다고 폄훼(?) 했었는데, 이게 은은하고 싱그런 과즙냄새가 나는 블랙베리 앤 베이랑 합쳐지니까 뭔가 중성화 되면서 향긋한 과즙냄새와 함께 나무 냄새가 난다. 오오. 새로운 발견 오오. 하긴 내가 좋아하는 두 향을 합쳐놨으니 내 코에야 당연히 좋으려나. 

조 말론 공식 사이트에도 프래그렌스 컴바이닝에 대한 페이지가 있긴 하지만,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은 나름 뉴 향이라서 레이어링에는 올라와있지 않은 것 같다. 다른 블로그들을 뒤져보니 블랙베리 앤 베이와 레이어링 하거나, 아니면 심지어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와 레이어링을 하기도 하는 모양. 그럼 잉글리시 오크가 두개 중복되는 거 아닌가?;;; 여튼 레이어링이라니, 이거 조 말론의 새로운 향들을 알아가는 것 만큼 재미있지 뭔가. ㅎㅎㅎ


1. 블랙베리 앤 베이 + 잉글리시 오크 레드커런트 (or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블랙베리 앤 베이

일단 오늘 레이어링 해 본 것은 블랙베리 앤 베이 +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이 다 닳아가서 ㅎㅎ) 결론을 말하자면, 블랙베리와 레드커런트 때문에 싱그런 과즙향이 물씬 나지만, 둘 다 그렇게 달지 않은 향이라서 과즙향 자체는 은은하고, 그러면서도 우디한 잉글리시 오크 향이 베이스를 잡아주어 시원한 느낌도 든다.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이랑 레이어링 했을 때는 이것보다 우디한 향이 더 강했다. 오오 그래, 이것이 나의 시그니쳐 향수인 가보다! ㅎㅎ (무슨 시그니쳐 향수가 이렇게 매일 바뀌나 ㅋㅋㅋ 어쩔 수 없다. 향알못이라서 ㅎㅎㅎ)


2. 블랙베리 앤 베이 +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블랙베리 앤 베이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이것도 참 의외로 되게 잘 어울리는 조합. 블랙베리 앤 베이는 꽤 과즙향이 강한 편이라서, 약간 건조한 듯한 다른 향수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우드 세이지 씨쏠트에 있는 자몽향이랑 블랙베리향이 과즙향을 풍성하게 만드는 동시에 세이지의 허브향이 밑에 잔잔하게 감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블랙베리 앤 베리는 살짝 달달하고,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는 조금 짭짤하고 건조한데, 둘이 만나서 단짠 조합이.... 훨씬 더 풍성하고 독특한 향이 된 것 같다. 레이어링 하고 나서 처음 맡아보고 '우와' 소리가 절로 났다. 사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향들의 조합이라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듯. 

3. 블랙베리 앤 베이 + 라임 바질 앤 만다린

라임 바질 앤 만다린블랙베리 앤 베이

그래서 샘플을 받아오고 나서도 처치곤란이었던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을 페어링 해 보기로 했다. 조 말론 공식 사이트에서는 레드 로지즈와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을 레이어 해 보라고 했는데, 막상 해 보니 별로였다. 바질의 톡 쏘는 향을 레드 로지즈가 잡지 못한다고 해야하나. 레드 로지즈 역시 장미 냄새 중에 뭔가 훅 치고 들어오는 독한 향이 있는데, 그 둘이 같이 훅 치고 들어오니 약간 맡기 괴로운 향이 되었다. 그래서 대신 만능(?)인 블랙베리 앤 베이랑 레이어링을 해 보았는데, 이건 오히려 괜찮은 듯. 이 조합도 조 말론 공식사이트에서 추천하는 조합이긴 하다. 블랙베리가 워낙 풍성한 향이라 쌉쌀하고 건조하고 톡 쏘는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을 좀 잡아주는 것 같다. 그냥 라임 바질 앤 만다린만 뿌리는 것보다는 블랙베리 앤 베이랑 함께 뿌리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조합된 향이 나쁘지는 않다. 비누냄새 같기도 하고. 어쩌다 한번 심심할 때 이 조합으로 뿌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4. 라임 바질 앤 만다린 +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라임 바질 앤 만다린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이 조합은 조 말론 공식 사이트에서 꽤 추천하는 조합인데, 이름도 uplifting pair라고 해서 아예 컴바이닝 세트로도 나와있다. 신기한 게 이 둘을 레이어링 하고 나니 원래 잘 안 느껴지던 시트러스 향이 더 강하게 난다. 우드 세이지 씨쏠트에 들어있는 자몽향이랑 같이 합쳐져서 그런가보다. 상대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바질향은 훨씬 사그라들고 우드 세이지 씨쏠트에 들어있는 다른 허브향에 묻혀서 훨씬 은은해진다. 그래서 허브향과 비누향이 살짝 나지만 그럼에도 첫향의 시트러스가 톡 쏘면서 좀 더 강하게 나는 조합이 된 듯 하다. 내가 바질향에 적응을 좀 해서 그게 그렇게 거슬리지 않게 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 조합은 나쁘지 않다.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는 원래 굉장히 은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조합으로 하면 훨씬 색이 분명하고 개성있어진다. 그리고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은 조금 더 참을만(?) 해진다. ㅎㅎㅎ 


5.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 미모사 앤 카다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미모사 앤 카다몸

역시 처치 곤란인 미모사 앤 카다몸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조 말론 공식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랑도 조합이 가능한 모양이다.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도 향이 좋은데, 둘 다 꽃향기인데 조합이 어떨까 궁금해 졌다. 둘을 뿌려보았는데,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가 좀 화한 면이 있어서 세련된 느낌을 더해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나한테는 미모사 앤 카다몸의 향신료 향이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가 좀 약해서 그런가, 미모사 앤 카다몸 한번 뿌릴 거면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를 두번쯤 뿌려야 균형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뿌릴 거면 굳이 두 향을 레이어 해서 뿌릴 필요가 있을까? 사실,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는 향 자체가 좋아서 그냥 그것만 뿌리는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6. 미모사 카다몸 + 튜버로즈 안젤리카

튜버로즈 안젤리카미모사 앤 카다몸










 

사실 둘 다 개별적으로 뿌렸을 때는 별로였는데, 막상 두개를 레이어링 해 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은 조합이긴 하다. 양쪽 다 꽃향기가 조금씩 들어있는데 두개를 합치니 꽃향기가 훅 하고 살아나는 것 같다. 


7.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이건 조말론 공식사이트에서 Fruitty Pair라고 이름붙인 조합.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나 내가 둘 다 좋아하는 향이다 보니 좋아할 수밖에 없는 향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읭? 이건 또 의외다? ㅎㅎ 일단 화한 느낌이 드는 것은 분명하다. 잉글리시 페어나 잉글리시 오크나 둘 다 약간 화하고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리지아 꽃향기와 레드커런트가 섞여서 그런가 어쩐지 꽃향기 같은게 뭉클뭉클 강하게 흘러나오고 그 와중에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약간 짠맛이..? 뭐지! (내 땀냄새라고 하진 말아주길 ㅎㅎ) 아무튼 ... 그냥 그렇다. ㅎㅎㅎ 이상하다. 둘다 좋아하는데. 이 향수는 그냥 각기 따로따로 쓰는 걸로. 

8.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 +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이 조합도 첫 향은 의외로 괜찮다.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는 시원한 느낌을 내 주고,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의 향신료 향이 조금 가라앉으면서, 두 향에 다 있는 우디한 나무 냄새가 은근슬쩍 풍겨온다.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에 있는 향 때문에 약간 달달하기도 하고,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향 때문에 약간 싸하게도 느껴진다. 그래도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 향이 좀 세긴 해서, 정말 이걸 뿌리고 다니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다. 잔향으로 갈 수록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 향이 더 강해진다. 나쁘지는 않다. 


9. 벨벳 로즈 앤 우드 + 레드 로지즈

벨벳 로즈 앤 우드레드 로지즈 이 두 향수를 레이어링 하면 여성적인 꽃향기가 끝내준다는 리뷰를 어디서 보았다. 그러나 적어도 내게 이 둘 조합의 첫향은 꽤 괴롭다. 레드 로지즈에 톡 쏘는 신(?) 향이 섞여 는데 그게  영 장미향을 눈치채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그 톡 쏘는 향이 조금 사라지면서 잔향이 남는데, 잔향에는 두 향수의 장미향이 섞여서 꽤 향긋한 장미냄새가 된다. 그러나 잔향까지 기다리기 힘들어서 어디 이 조합 하겠나 싶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블랙베리 앤 베이 + 잉글리시 오크 레드커런트 or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은 참 좋았다. 블랙베리 앤 베이 +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조합은 참 좋았다. 두 향수가 만나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실 라임 바질 앤 만다린이나 미모사 카다몸처럼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다른 향수들은  단일 향수로 쓸 때보다 그나마 낫다는 거지, 그리고 조합을 하면 나를 괴롭히던 향들이 좀 약해진다는 정도지, 딱히 내가 좋아하는 향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결론은, 블랙베리 앤 베이 +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 (or 레드커런트) 조합을 당분간 써보겠다는 것. ㅎㅎㅎ 


아무튼 요즘 꽂혀있는 향수가 조 말론 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특히 지난번 포스팅에서 리뷰했던 블랙베리 앤 베이는 처음에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마음에 들기 시작한데다 주변에서 향이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샘플이 다 닳을 때까지 뿌리고 나니 심하게 아쉬워졌다. 그래서 최초로 미니어쳐가 아닌 30ml 짜리 조 말론 향수를 구매하기로 결심! 오늘은 친구와 조 말론 매장에 다녀왔다. 사실 가서도 한참 망설였다.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을 살 것이냐, 아니면 블랙베리 앤 베이를 살 것이냐. 그런데... 어쨋거나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은 아직 미니어쳐가 남아있고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긴 하다. 이 향도 정말 맡을 수록 점점 좋은 것 같다) 두개를 사기엔 재정적으로 후덜덜해서 일단 급한대로 블랙베리 앤 베이만 샀다. 당분간은 이 향수가 나의 시그니쳐 향수가 될 듯!! (드디어 내게도 시그니쳐 향수라는 것이 생기다니!!! ㅎㅎㅎ 참 멀리 왔다. 향수 취향 따위 없던 향알못 내가 ㅎㅎ)

블랙베리 앤 베이를 사면서 샘플을 몇 개 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샘플이 다 있는 건 아니라고 해서 몇 개 골라온 것이 레드 로지즈 (Red Roses), 미모사 앤 카다몬 (Mimosa and Cardamon), 그리고 라임 바질 앤 만다린 (Lime Basil and Mandarine) 이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같은 몰 안에 있던 세포라에 갔다가 또 두개의 인텐스 계열 조 말론 샘플을 더 얻었는데 하나는 벨벳 로즈 앤 우드 (Velvet Rose and Oud), 다른 하나는 튜버로즈 안젤리카 (Tuberose  Angelica). 결국 총 다섯개의 샘플을 얻었는데, 이 얘기를 동생에게 하니까 동생이 혹시 언니 미국 세포라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거 아니냐고 ㅋㅋㅋ 샘플 다 긁어가는 사람으로 ㅎㅎㅎ

조 말론 향수에 대한 지난 리뷰들은 아래를 클릭

2018/03/14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7) 내가 좋아하는 향과 나에게서 났으면 하는 향이 다를 때 - 조 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2018/04/01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13) 조 말론의 다른 향들이 궁금해졌다 - 조 말론 다크앰버 앤 진저 릴리, 블랙베리 앤 베이,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




아무튼, 시향기록을 남겨보도록 하자. 

조 말론 미모사 앤 카다몬 (Mimosa & Cardamon)조 말론 라임 바질 앤 만다린 (Jo Malone Lime Basil and Mandarin)

먼저 미모사 앤 카다몸은 첫 향은 향신료같은 뭔가 독하고 뜨뜻한(?) 향이 난다. 뭔가 꽃냄새 같은 것도 나는데 그게 미모사인가 보다. 미들노트에는 바닐라처럼 부드럽고 달달한 냄새가 난다. 그런데 그 향신료 같은 향이 나에게 멀미를 준다...ㅎㅎㅎ 아니 정말 이런 향을 쓰는 사람들이 있나 해서 뒤적거려 봤는데 정말로 이 향을 데일리로 쓰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이국적인 느낌이 좋은 건가..? 아무튼 내 취향은 아닌 걸로. 

라임 바질 앤 만다린 조 말론에서 가장 유명한 향수 중에 하나라는데... 이거 역시 아무래도 내 취향은 아닌 걸로. 라임이나 만다린 냄새보다는 바질 냄새가 강하게 난다. 분명 라임이나 만다린이라면 시트러스 향이 많이 날 것 같은데 그런 상큼함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거의 바질 냄새 뿐인데, 이게 나한테만 그런 건지 굉장히 독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바질... 음식에 들어간 건 잘 먹는데 어쩐지 이 향은 좀 모기약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코롱 주제에 왜 이 모기약 냄새는 한 번 뿌리면 사라지지도 않는 것인가. 


조 말론 레드 로지즈 (Jo Malone Red Roses)조 말론 벨벳 로즈 앤 우드 (Jo Malone Velvet Rose & Oud)

이번에는 두개의 로즈 향을 비교해 보도록 하자. 레드 로지즈는 색깔부터 이미 분홍색이고 '나 꽃의 여왕 장미요' 하는 향이다. 끌로에가 싱그러운 생장미 향이라면, 조 말론은 그것보다는 훨씬 더 화려하고 관능적인 장미향이라고 해야 하나. 대 놓고 장미향이 훅 하고 찌르고 들어온다. 이게 무슨 향일까 뭐 그런 거 없다. 너무 명백한 장미향인데, 끌로에보다는 인위적인 장미향이다. 벨벳 로즈 앤 우드의 경우는 약간 매캐하고 맵싸한 느낌이 전반적으로 나는데 의외로 장미향 자체는 굉장히 은은하다. 레드 로지즈가 코를 장미꽃에 푹 박았을 때 날 법한 향이라면, 벨벳로즈 앤 우드는 늦은 밤이나 새벽에 산책 나갔다 오는 길에 어디서 은은하게 장미향이 난다? 하는 느낌의 향이다. 다만 장미향이 은은하다는 거지 향 자체는 인텐스 계열 특유의 독특한 매캐한 향 때문에 마냥 은은하지만은 않다.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벨벳 로즈 앤 우드. ㅎㅎㅎ



조 말론 튜버로즈 안젤리카 (Jo Malone Tuberose Angelica)

튜버로즈 안젤리카 역시 인텐스 계열 코롱 답게 살짝 독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달달한 꽃향기가 난다. 길에 핀 들꽃 냄새 같은데, 향긋한 동시에 매캐하다. 튜버로즈나 안젤리카나 내가 본적이 없는 식물이라 ㅎㅎㅎ 대체 이게 어떤 꽃 냄새인지 잘 짐작이 안 간다. 아무튼 기본적으로는 플로럴 향인 것 같다. 뭐 나쁘지는 않다만... 워낙 조 말론에 내가 반해있는 다른 향들이 많다보니 딱히 마음이 끌릴만한 향은 아닌 듯 하다. ㅎㅎ 

그 외에 조 말론 매장에서 이것저것 시향해 보긴 했는데, 그냥 한번 맡아본 것들은 느낌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굳이 결론을 쓰자면, 피오니 블러썸 스웨이드 그거 별로였다. 와일드 블루벨 그것도 별로였다. 넥타린 블로썸 그것도 너무 흔하고 은은했다. 얼그레이 큐컴버 괜찮은 거 같은데 기회되면 한번쯤 더 맡아보고 싶다. 결론은... 내가 산 블랙베리 앤 베이가 제일 낫다는 거 ㅎㅎㅎ 그리고 역시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 넛이 현재로서는 짱이라는 거 ㅎㅎㅎ 

예전에 베이비 파우더 향이 나는 향수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다.

2018/03/12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5) 어디서 베이비 파우더 냄새가 난다 -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 데메테르 베이비 파우더, 데메테르 퍼지 네이블

그때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불가리 쁘띠 에 마망을 맡아보게 되어서 올리는 시향기록. 

불가리 쁘띠 에 마망 (Bvlgari Petits et Mamans)

 쁘띠 에 마망은 유독 리뷰가 참 많이 엇갈리는 향수였다. 베이비 파우더 향 하면 무조건 제일 먼저 언급되는 향수이면서도 막상 리뷰에는 생각했던 베이비 파우더 향이 아니라 실망했다는 평도 많았다. 심지어 사실은 허브 냄새가 더 많이 난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래서 대체 뭔 향이길래? 하고 궁금하긴 했는데 미니어쳐 구하기가 어려워서 적당히 포기하고 있던 중, 우연히 세일을 심하게 하는 걸 보고 10불대에 구매했다. 

탑노트 - 베르가못, 오렌지, 로즈우드

미들노트 - 카모마일, 해바라기, 와일드 로즈

베이스 노트 - 복숭아, 백합, 아이리스 


....라고 하는데, 솔직히 위에 노트들에 언급된 냄새가 나는 건지는 전혀 모르겠다.ㅎㅎㅎ 첫 향에서 살짝 베르가못 냄새가 나는 것 같긴 하고, 뒤에서도 살짝 쌉쌀한 느낌이 있긴 하다. 그래도 확실히 제일 크게 느껴지는 건 베이비 파우더 향이다. 향긋한 분냄새라는 점에서는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랑 정말 비슷한데,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보다 쁘띠 에 마망 쪽이 좀 더 파우더리하고 텁텁한 느낌이 강한 것 같다. 중간에 달달한 냄새가 올라오면 약간 탈지분유나 연유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총평은... 글쎄다. ㅎㅎㅎ 베이비 파우더 향은 데일리로 쓰기엔 좀 그렇지만, 가끔씩 확 땡길 때가 있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는 미니어쳐니까, 불가리 쁘띠 에 마망 하나쯤 가지고 있으면 가끔씩 땡길 때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하도 마음에 드는 다른 향들이 많아서 그런지, 기대에 비해 그냥 쫌 그렇다고 해야 하나. ㅎㅎㅎ

사진으로 볼 때는 향수병이 못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보면 의외로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병에 곰도 그려져 있고...ㅎㅎ 뚜껑 열면 주황색 스프레이가 나오는데 그것도 그거대로 귀엽고. ㅎㅎㅎ 

지난 포스팅에 조 말론 향수에 대한 포스팅을 했었다. 니치향수인 줄 알았으나 국민향수가 되고 만 조 말론 ㅎㅎㅎ 그런데 조 말론 향수들을 맡다보면 왜 조 말론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향이 세련되었다고 해야 하나. 무슨 향이든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편인데, 여러 향들이 따로 튀지 않고 조화롭게 섞여있다는 느낌이다. 아무튼 나는 조 말론의 다른 향들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는데, 딱히 맡을 기회가 없었다. 그걸 맡으려면 차 타고 조 말론 매장이 있는 몰에 가야 하는데, 현재는 차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그래서 맡아본 향이라고는 지난 번 포스팅에 썼던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 넛,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정도였다. 

지난 포스팅을 보려면 클릭

2018/03/14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7) 내가 좋아하는 향과 나에게서 났으면 하는 향이 다를 때 - 조 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그런데 역시 동생네 동네에  조 말론이 있는 세포라 매장에 들리게 되면서!! 샘플을 두 개 얻어왔다. (사실 세포라에서는 샘플 하나 정도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데 옆에 있던 동생을 시켜서 하나 더 얻었다 ㅋㅋㅋ) 그 두 향은 언니가 좋아한다고 해서 궁금했던 다크앰버 앤 진저 릴리, 그리고 가장 인기가 많은 축에 속한다는 블랙베리 앤 베이. 그리고 친구가 좋아한다던 우드 세이지 앤 씨쏠트도 맡아볼 수 있게 되었다.


조 말론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 (Jo Malone Dark Amber and Ginger Lily)조 말론 블랙베리 앤 베이 (Jo Malone Blackberry and Bay)조 말론 우드 세이지 앤 씨 쏠트 (Jo Malone Wood Sage and Sea Salt)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 (Dark Amber and Ginger Lily)는 인텐스 계열 코롱으로, 금방 사라지는 코롱의 속성에도 불구하고 좀 더 길게 남아있다고 한다. 다크 앰버 앤 진저 릴리는 다른 코롱들 보다도 더 비싸기도 하고 미니어쳐도 없어서 좀처럼 맡아볼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운 좋게 샘플을 득템. ㅎㅎㅎ 굉장히 독특한 향이라고 생각했다. 나무 냄새가 많이 나고 향료냄새라고 하나 여튼 스모키하고 스파이시한 향이 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파우더리한데, 그래서 살짝 텁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뒤로 갈 수록 처음의 스파이시한 향이 좀 사그라들고 대신 바닐라 냄새 같은 살짝 달달한 냄새가 더 많이 올라온다.  개성있는 향이라 매력적이라고는 생각하는데, 내 몸에서 이런 냄새가 나길 바라는지는 잘 모르겠다.ㅋㅋㅋㅋ 이게 참 문제인 것 같다. ㅎㅎㅎ 냄새가 참 좋은데 이런 냄새를 내가 풍기고 다니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어..ㅋㅋㅋㅋ (아 그런데 우리 언니는 이걸 데일리 향수로 쓰고 있다고 하니 이런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거구나..ㅎㅎㅎ) 인텐스라서 그런지 잔향은 확실히 다른 코롱들보다 더 오래 가는 것 같다. 

블랙베리 앤 베이 (Blackberry and Bay)는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 알 것 같은 상콤한 향이었다. 솔직히 탑노트, 미들노트, 베이스 노트의 구분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빨리 사라져버리긴 한다. 첫향은 확실히 블랙베리 향인 것 같고, 자몽같기도 한 은은하고 상큼한 과즙향이 같이 난다. 뒤로 갈 수록 나무 냄새도 살짝 나는 것 같다. 다른 조 말론 향수들고 마찬가지로 쌉싸름하고 시원한 향도 같이 난다. 과즙향이라지만 그렇게까지 달달하지는 않고 전체적으로 향긋한 다른 향들과 고급지게 조화를 이루는 세련된 향이다. 완전 마음에 든다. ㅎㅎㅎ 

우드 세이지 앤 씨 쏠트 (Woodsage and Sea salt)는 처음에는 허브향과 짭짤한 소금향이 났고, 미들노트에서는 부드러운 자몽향이 났다. 베이스 노트는 다시 마른 소금 냄새와 함께 살짝 남은 허브냄새. 확실히 위의 두 향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조용한 향이다. 

불가리 오떼 베르 (Bvlgari Eau The Vert)

친구가 추천해 준 불가리 오 떼 베르. 떼 베르는 그린 티, 즉, 녹차 냄새가 나는 향수라는 뜻이다. 불가리의 차 라인에는 그린티, 화이트티, 레드 티, 블루 티 이렇게 네 가지가 있는데 그린티가 그 중에서도 제일 인기가 좋은 것 같다. 녹차 냄새가 나는 다른 향수로는 엘리자베스 아덴의 그린티가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맡아보지는 못했다. 불가리 그린티 보다는 가벼운 향이라고 한다.  

첫 향이 참 좋다. 오렌지 껍질같은 산뜻한 시트러스 향과 함께 베르가못 향이 난다. 그런데 다른 시트러스 향수들처럼 가볍고 상큼한 게 아니라 쌉쌀한 티의 향이 같이 나서 그런지 꽤 무게감이 있는 향이다. 첫 향부터 은은하고 낮게 깔리는 느낌인데 차의 쌉싸름한 냄새가 뒤로 갈 수록 더 많이 난다. 미들노트 부터 자스민 냄새가 꽤 강해지지만 그래도 은은하다. 장미 냄새가 나는 건 잘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잔잔한 향수다. 시원한 향이 나서 여름에 뿌리고 다니기에 좋을 것 같다. 그나저나 녹차 냄새가 나는 향수가 이렇게 좋은 건 줄 처음 알았다. 이건 큰 걸로 사도 후회 안 할 듯. ㅎㅎ 

탑노트: 코리앤더, 오렌지 꽃, 만다린 오렌지, 베르가못, 레몬, 카다몸

미들노트: 자스민, 은방울 꽃, 장미

베이스 노트: 샌달우드, 머스크, 앰버, 녹차, 시더 


불가리 오 파퓨메 오 떼 베르 (Bvlgari Eau Parfumee au the vert)

내가 산 것은 불가리 오 떼 베르 미니어쳐다. 사실 이제 가급적이면 미니어쳐는 사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이게 마지막 미니어쳐가 될 듯 하다. 그런데 병이 너무 예뻐서! 오리지널 향수보다 미니어쳐가 더 예쁘게 생긴 듯! ㅎㅎㅎ 다른 미니어쳐들이 주로 스플래시 타입인 것에 비해 이건 스프레이라서 좋았다.





지난 번에 레플리카 향수에 대한 포스팅을 했었는데, 그 포스팅에서 '게으른 일요일 아침' 향과 '벽난로 옆에서' 향이 궁금하다고 썼었다. 그런데, 지난 주에 동생네 놀러갔다가 그 동네 세포라에서 두 향의 샘플을 득템! ㅎㅎㅎ 리뷰를 올려보기로 한다. 

지난 글이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를 클릭.

2018/03/19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10) 특정 순간을 재현하는 레플리카 향수 - 마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재즈클럽, 레플리카 플라워 마켓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 레이지 선데이 모닝 (Maison Martin Margiella Lazy Sunday Morning)

레이지 선데이 모닝 (Lazy Sunday Morning) 은 2003년 플로렌스에서 맞은 어떤 일요일 아침을 재현한 향수다. 어떤 아침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깨끗한 아침이었던 모양인지, 향을 맡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누냄새다. 세탁비누 냄새같은데 데메테르 클린 솝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조금 더 부드럽다. 비누 냄새 계열의 향들이 생각외로 꽤 인기가 많은 것 같다. 레이지 선데이 모닝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인 듯. 깨끗한 느낌이 나서 그런 가보다. 하지만 역시 나는 비누냄새를 왜 굳이 향수로 뿌리는지 모르겠어서, 딱히 내 취향은 아닌 걸로. 그나저나... 남들에겐 게으른 일요일 아침의 냄새가 이런 것인가? 나한테 게으른 일요일 아침의 냄새는 쿰쿰하고 부들부들한 이불냄새인데. 아... 남들의 이불에서는 비누 냄새가 나는 건가?!! 그렇구나!!! (큰 깨달음ㅎㅎ)

노트 정보를 가져오긴 했지만 향 변화가 크게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처음에는 비누냄새가 조금 독하게 나고 뒤로 갈 수록 점점 은은해진다. 미들노트에서는 살짝 장미향 같은 게 섞인다. 그래도 여전히 향 전체를 흐르고 있는 비누냄새가 강해서 꽃냄새는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탑노트: 알데히드, 서양배, 백합

미들노트: 아이리스, 로즈, 오렌지 꽃

베이스 노트: 화이트 머스크, 인도네시안 페츌리 오일


매종 마틴 마르지엘라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 (Maison Martin Margiella By the Fireplace)

분명히 내 취향일 거라고 생각했던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 (By the Fireplace). 벽난로 옆에서라는 뜻인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재현에 충실한 향이다. 말 그대로 '장작' 냄새가 난다. ㅋㅋㅋ 밤새 불탄 장작 냄새. 1971년의 샤모니 (Chamonix) 에서 맡은 냄새라는데, 어릴 때 스키라도 타러 갔다가 산장 벽난로에서 맡은 향이었을까? 몸에서 불탄 장작 냄새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잘 이해가 가진 않지만 ㅎㅎㅎ 그래도 참 좋은 냄새다. 장작이 불에 타는 냄새인데 어딘가 모르게 향긋하다. 마치 나무에 원래 배어있는 향이 불타면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느낌. 매캐하면서도 풀향 같기도 한데, 캠프파이어 할 때 많이 맡아본 냄새다. 이 향을 뿌리고 잠들면, 마치 캠프 파이어 옆에서 깜빡거리는 주황색 불빛을 구경하다가 스르르 잠들어버리는 기분으로 잠이 들 것 같다.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 넛도 자기 전에 뿌리고 킁킁거리면서 잠들곤 했는데, 어쩌면 레플리카도 그런 맛에 뿌리는 향수이려나? ㅎㅎㅎ 

탑노트: 핑크 페퍼, 오렌지 꽃잎, 클로브 오일

미들노트: 밤, 나무 오일

베이스: 바닐라, 페루 발삼


실제 세포라에서 받아온 샘플은 이렇게 생겼지만 ㅎㅎㅎ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에서 나온 '레플리카 (Replica)' 라는 향수가 있다. 이 향수는 어떤 특정한 순간을 복제해서 재현한다는 의미로 레플리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향수마다 각기 어느 시공간을 모티브로 삼은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다. 예를 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샘플은 Replica - Jazz Club이라는 향수인데, 2013년 브루클린의 재즈 클럽의 향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순간을 재현했다는 것 때문인지 레플리카 향수는 이름들이 독특하다. '게으른 일요일 아침 (Lazy Sunday Morning)' 이라는 향도 있고, '벽난로 옆에서 (By the Fireplace)' 라는 향도 있다. (사실 '게으른 일요일 아침' 향이 한국에서는 인기가 많은 모양인데, 내가 궁금해지는 건 '벽난로 옆에서' 향. ㅎㅎㅎ) 한국에서는 판매하지 않아서 해외직구로 구하고 있는 모양이다. 참고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매장에서는 점원들이 의사가운을 입고 구매를 도와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점원이 아니라 전문가로서 돕는다는 의미라는데 (잠깐 웃고 가자 ㅎㅎㅎ) 아무튼 그것과 같은 맥락인지 모르겠지만, 향수병의 모티브가 약간 빈티지한 약병같다. 병에 붙어있는 라벨은 종이가 아닌 패브릭이다. Sephora에서도 파는데, 가서 보니 가격대가 꽤 비쌌다. 100ml에 126불 정도!;;; 

사실 향.알.못이었던 나는 레플리카가 향수 이름이라는 것도 모르고, 옛날에 받은 향수 샘플 중에 '레플리카'라는 게 있길래 무슨 시향을 위한 복제품인가... 하고 생각했지 뭔가. 여튼, 향수탐색을 시작하면서 이 샘플의 향을 맡아봤는데 역시 남자 향수인 것 같아서 구석으로 치워뒀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찮게 새로운 향의 레플리카 공짜 샘플을 받아오는 바람에 신이 나서~ ㅎㅎㅎ 두 향수를 묶어서 쓰는 레플리카 향수 특집.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재즈클럽 (Maison Martin Margiella Replica Jazz Club)


방금 전에 언급했던, 레플리카 재즈클럽 향이다. 너무 당당하게 아래 남성용 향수 (male fragrance)라고 써 있는데, 아래 꽃향기보다 이게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왜 내 취향은 다 이렇게 남성용인가!) 첫향의 알코올 향이 재즈클럽에서 나는 술냄새 같은 느낌이 좀 든다. 향 자체는 좀 묵직하다. 나무향과 쇠향, 그리고 Cigar 향이 뒤섞여 약간 알싸한 냄새가 한참 나다가 베이스 노트는 달달해진다. 재즈 클럽이니까 쇠향도 브라스 같은 악기 냄새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좀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솔직히 자꾸 맡다보니...아무래도 파스 냄새 같다. ㅎㅎㅎ 이유는 모르겠다. 재즈클럽에서 아저씨들이 파스를 붙이고 앉아있나? ㅎㅎㅎ 암튼 잠깐 리뷰들을 둘러보니 한국에서는 레플리카 남성용 향수 중에서 '재즈클럽'이 제일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그렇겠지 아무래도 익숙한 냄새일테니까.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플라워 마켓 (Maison Martin Margiella Replica Flower Market)


오늘은 일이 있어 친구랑 몰에 갔다가 Sephora에 들렸는데, 친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향수가 있다며 맡아보라고 해서 레플리카 플라워 마켓 향을 맡아 보았다. '꽃시장'이라는 이름답게 어디서 갓 따온 꽃향기가 뭉글뭉글 느껴지는 향이어서, 처음에 맡아보고는 '우와!'라고 했다. 이 향은 2011년 파리의 꽃 시장을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장미향이 제일 강하게 느껴지는데 이 꽃 저꽃 다 섞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고, 어쩐지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향이다. 그런데 Sephora에서 향수를 구경한 게 처음이어서 몰랐는데, 점원에게 샘플을 달라고 하면 점원이 빈 샘플병에 몇번 칙칙 뿌려서 담아주더라! 그래서 친구의 도움으로 레플리카 플라워 마켓 향을 손에 넣게 되었다. 집에 와서 일하면서 다시 뿌려봤는데 (또 다시 시작된 양쪽 팔에 다른 향 뿌리고 일하기 ㅎㅎ) 첫향에서는 나지 않던 물비린내가 미들노트에서부터 올라와서 순간 울렁거릴 뻔 하긴 했다. 왜 물 냄새를 넣었는지는 알겠다. 갓 따와서 물에서 막 꺼낸 향처럼 싱그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이꽃저꽃이 물향 때문에 한데 모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원래도 비위가 약한 나는 이 물비린내에 진짜 약한 듯. 내가 웬만하면 안 그러는데 일 하는데 방해될 정도여서 결국 물로 씻어내고 다시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을 칙칙 뿌리고 '아아~ 바로 이거지~' 하면서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ㅎㅎㅎ 지금 이 포스팅을 하면서 다시 오른팔에 플라워 마켓 향을 뿌려봤는데, 아까에 비해서 훨씬 물비린내의 충격은 덜한 것 같다. 음 향은 괜찮은데, 그렇다고 내가 사서 쓰고 싶지는 않은 정도의 호감도다. ㅎㅎ

위에는 멋들어진 사진들을 가져왔으나, 내가 가지고 있는 샘플의 실제 비주얼은 이러하다. ㅋㅋㅋㅋ 왼쪽이 백화점 웹사이트에서 분명 뭔가를 사면서 공짜로 받았을 레플리카 재즈클럽 샘플이고, 오른쪽이 오늘 Sephorad에서 받아온 레플리카 플라워 마켓. 이 사진을 대표사진으로 올릴까 하다가 너무 비주얼이 별로라서 멋들어진 사진들을 위에 가져왔다. ㅎㅎㅎ 다음 주 이맘때쯤에는 동생을 만나게 되어 있는데, 동생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샘플들을 모조리 주겠다고 하니, 그걸로도 한참 향수놀이...아니 향수탐색을 할 수 있겠다. ㅎㅎㅎ 



데메테르는 굉장히 독특한 향수 브랜드다. 애초에 설립자가 일상 속의 향을 재현하기 위해서 향을 만들기 시작한 거라고 하는데, 그 이름들을 보고 있노라면 딱히 향수라고 하기에는 좀... 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고양이 털, 비, 세탁소, 흙, 지렁이, 피자, 딱풀 향도 있는데, 설마 이런 걸 정말 뿌리고 다니라고 만든 건 아니겠지 싶다. ㅎㅎㅎ 아무튼, 향수라기보다는 장난감 같기도 한 데메테르는 그래서 자칭 타칭 향수 도서관이라고 불린다. 향수를 재미로 뿌리고 있는 나도 역시 데메테르가 궁금해져서 데메테르 웹사이트에 들어가 찝적거리다가(?) 몇개의 샘플러를 질렀다.


데메테르 웹사이트에 가면 몇백개가 넘는 향들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궁금하면 들어가 보시라. https://demeterfragrance.com

데메테르의 특징은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의 구분이 없고 딱 한가지 향만 분명하게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을 정직하게 재현하고자 한 노력이 보인다는 것이다.  미니어쳐도 있었지만 굳이 샘플러를 산 것은, 미니어쳐가 이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향수로 사기엔 좀 위험부담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지른 샘플은, 예전에 아기냄새 특집에서 썼던 퍼지네이블과 베이비파우더 향 외에도 네개가 더 있었는데, 아래와 같다.


(퍼지네이블과 베이비파우더향에 대한 지난 포스팅을 보려면 클릭 

2018/03/12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알.못의 향수탐색 (5) 어디서 베이비 파우더 냄새가 난다 )



데메테르 체리 블라썸 (Cherry Blossom), 퓨어 솝(Pure Soap), 애플 블라썸 (Apple Blossom), 레인 (Rain)


데메테르 체리 블라썸 향은 사실 벚꽃향이라 기대치가 컸다. 그런데 사실 냄새가 벚꽃 같지는 않다. 상큼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긴하는데 약간 샴푸향 비슷하다. 그 향이 나쁘진 않은데 딱히 벚꽃이라고 할 이유는 없는 것 같고 오히려 과일향에 가깝다. 굳이 말하자면 체리맛 사탕향? 데메테르 애플 블라썸 향도 역시 기대가 컸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사과향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지는 않았으나, 나는 사과향 샴푸 향도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향이 나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예상과 달리 상큼한 사과향은 커녕 살짝 비리고 달착지근한 향이 나서 당황했다. 이건 정말 뭐라 표현하기 힘든 향이다. ㅎㅎㅎ 데메티르 퓨어 솝은 정말로 딱!!! 세탁비누 냄새가 난다. 어렸을 때 엄마가 화장실에서 빨래비누로 운동화 빨아줄 때 나던 냄새? ㅎㅎㅎ 정말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딱딱한 세탁비누 냄새.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이라과 해서 사긴 했는데, 그리고 세탁비누 향이 나쁘진 않은데, 굳이 왜 이걸 뿌리고 다니는 걸까? 하는 생각은 든다. 빨지 않은 옷을 입었을 때 빨래한 옷인 척 하기 위해? ㅋㅋㅋㅋ 네번째 데메테르 레인 향은, 애초에 뿌릴 생각으로 산 건 아니었다. 다만, 웹사이트에 나와있는 설명에, 비가 내리기 직전의 그 쿰쿰한 먼지냄새를 재현한 거라고 하길래... 사실 그 냄새를 내가 엄청 좋아하기 때문에 궁금했다. 그런데... 아... 정말 충격적인 물 비린내가 났다. 너무 비리고 당황스러워서 씻어냈는데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 기대와 달라서 그랬을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애초에 방향제처럼 쓰라고 만든 향일 거야... 하고 생각하면서, 그 다음날 공기중에 뿌려보았다가 ... 환기하고 난리 법석.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뿌리면 절대로 그 비린내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데메테르 레인 너는, 향수는 커녕 방향제도 아닌 걸로. ㅜ_ㅠ 인터넷 구매 첫 실패 아이템이다. 

결론은, 베이비 파우더 향이 제일 좋다. 정말 정확하게 베이비파우더 향이다. 그리고 퍼지 네이블도 향이 좋아서, 가끔씩 향수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체리 블라썸도 상큼한 맛에 나쁘진 않고, 가끔 향수로 쓰거나 공기중에 뿌려 방향제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퓨어 솝은 솔직히 향수로 쓸 것 같진 않다. 가끔 빨래한 척 할 때 뿌리거나  방향제 용으로 쓸 수는 있을 것 같다. 애플 블라썸도 뭐.. 가끔 방향제로 쓸 수는 있을 것 같다. 레인은... 처치곤란이다. -_-;;; 혹시 원하는 사람 있으면 그냥 드리겠다. ㅎㅎㅎㅎ (그런데 나도 거부한 비향이고 보면 그걸 누가 원하겠어 ㅎㅎㅎ)






향수에 대해 알지 못하던 시절, 그러니까 여전히 향.알.못이지만 지금보다 더더욱 향.알.못이던 시절에는, 향수를 뿌리고 나면 그 향이 변하지 않는 줄 알았다. 향수냄새가 싫다고 생각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몇몇 향수의 잔향, 특히 사람의 체취와 뒤섞인 베이스노트가 내 기관지를(?) 못살게 굴어서 자꾸 딸꾹질이 나거나 속이 울렁거린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다시한번 엄숙하게 잔향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ㅎㅎ) 

향수탐색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향수는 뿌리고 나면 크게 세번 정도 향이 변한다. 향수의 향은 대개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탑노트는 알코올이 날아간 직후의 향, 미들노트는 뿌린지 10-15분 정도 지난 후에 나타나는 향, 베이스 노트는 뿌린지 두세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향이다. 현재까지 맡아본(?) 바로는 대체로 시트러스 향이나 톡 쏘는 향들이 탑노트에 배치되고, 머스크나 파우더리한 향들이 베이스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렇게 향수 향이 변하는데도 게으른 막코이다 보니 부지런하게 킁킁대지 않으면 그 변호를 알아채기 어렵다. ㅎㅎ 그 와중에도 일하다 말고  '어엉?' 할 만큼 그 향이 변화무쌍한 향수들이 있었다. 이 향수들은 향이 확확 변하기 때문에 재미있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그 향수들의 변화무쌍한 향 변화를 기록해보겠다.


모스키노 아이러브러브 (Moschino I love love)

먼저, 향수를 탐색하기 시작한 초반에 산 향수로, 변화무쌍 향수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향수는 모스키노 아이러브러브다. (뒤의 친구들을 보면 이게 내가 손에 넣은 다섯번째 미니어쳐 향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러브러브는 처음 뿌리면 톡 쏘는 듯한 오렌지와 자몽향이 난다. 처음에는 레몬향이라고 생각했는데, 맡다보니 오렌지와 자몽에 가깝다. 처음 아이러브러브를 사서 뿌렸을 때는 탑노트를 맡고 잘못 샀다고 생각했다. 십대에나 바르던 레몬향 로션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드디어 온라인으로 시향없이 구매하는 방법이 실패했다고 슬퍼하며, 다시 일자리로 돌아와 일을 했는데, 한 2-30분 후에 별 생각없이 손목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다가 깜놀. 언제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향이 망고향 같은 은은한 과일향과 꽃향기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 대체 이 향은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났을까? 잔향은 어쩐지 좀 파우더리 해진다. 아니 이렇게 변화무쌍할 데가. 확실히 베르사체나 불가리 아메시스트같은 우아한 맛은 없지만 그 확확 변하는 향이 어쩐지 잔재미를 주는 향수였다. 그래선지 의외로 일하면서 자주 뿌리게 되었다. 미니어쳐 병도 아주 귀엽다.  오리지널 향수병보다 훨씬 귀여운 것 같은데, 뚜껑이 똑같이 생겼다. ㅎㅎㅎ

내가 원래 귀찮아서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 정보를 잘 안 긁어오지만, 그래도 오늘은 변화무쌍 특집이나 한번 긁어와보기로 하자. ㅎㅎㅎ


탑노트: 오렌지, 자몽, 레몬, 레드커런트

미들노트: 시나몬 잎, 러쉬, 백합, 티로즈

베이스노트: 머스크, 타나카우드, 시더우드




지미추 오 드 뚜알렛(Jimmy Choo Eau de toilette)

두번째 향수는 지미추 오 드 뚜알렛이다. 하도 인터넷 리뷰에 평이 좋아서 궁금해서 사 본 향수인데, 프루티플로럴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알싸한 향이 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양이다. 표현에 따르면 커리어 우먼을 연상시키면서 자신감 넘치고 관능적이라나....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첫향에는 아주 독한 비누냄새 혹은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 냄새 같은게! 난다고 느꼈다 ㅋㅋㅋ 그러다가 미들노트에선 부드럽고 달달해지는데, 첫향에서는 단 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 어디 숨었다가 나온 향인지 몰라 어리둥절. ㅎㅎ 그러다가 마지막 향은 우디하게 마무리된다. 은은하다고 하거나 꽃향기라고 하기에는 첫향의 인상이 좀 강하고 아무튼 내게는 좀 종잡을 수 없는 향수다. ㅎㅎㅎ 그래도 미들노트는 꽤 좋았다. 미니어쳐는 오리지널 향수병이랑 똑같이 생긴 거 같은데, 뚜껑이 그냥 은색이다. 그리고 조금 더 성의없게 (?) 생긴듯. ㅎㅎㅎ


탑노트 - 배즙, 진저

미들노트 - 티로즈, 타이거 오키드

베이스 노트 - 시더우드


입생로랑 파리지엔느 (Ives Saint Laurent Parisienne)

세번째 변화무쌍 향수는 입생로랑 파리지엔느다. 사진에는 하얗게 나왔지만 사실 은은한 분홍색이다. 파리지엔느라고 해서 뭔가 시크한 향이 날 줄 알았는데 아아아주 달달한 향이 나서 당황스러운 향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달달한 향이 꽤 세련되어서 마음에 드는 향수다. 탑노트에서는 솔직히 말해서 살짝 치약냄새 같은 것이 ㅋㅋㅋ 나면서 과일향이 난다. 노트에 따르면 블랙베리와 크랜베리 향인 듯.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단향이 치고 올라오는데, 그냥 단게 아니라 아아아주 단 카라멜향 같은게 어디서. 아니 이게 어딜 봐서 파리지엔느? ㅎㅎㅎ 베이스는 머스크 때문에 파우더리 해진다. 그런데 그 카라멜 향의 인상이 아주 깊게 남는 달달한 향수다. 달달한 향수가 마음에 들기 쉽지 않은데, 파리지엔느는 그래도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미니어쳐가 오리지널 향수랑 똑같이 생겨서 귀엽다. ㅎㅎ 


탑노트 - 블랙베리, 크랜베리, 바이날 어코드

미들노트 - 모란, 바이올렛, 다마스크 로즈

베이스 노트 - 머스크, 베티버, 패츌리, 샌달우드 



조 말론 향수는 소위 '니치(niche) 향수' 라고 부르는 향수 중 하나다. 니치향수라는 개념은 2010년대 중반쯤 등장했는데, 국민들이 모두 국민향수를 뿌리다 보니 모두 냄새가 다 똑같아지는 바람에, 나름대로 남들과 다른 향으로 구분되고 싶은 사람들이 좀 덜 알려진 고급향수를 찾기 시작했는데, 이런 향수들을 소위 '니치 향수'라고 묶어부른다. 니치 향수에 속하는 향수들은 조 말론, 딥티크, 아닉구딸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친구말에 따르면 2-3년 전부터 교회에 가면 모두에게서 조말론 향이 났다고 하니 ㅋㅋㅋ 아마도 니치향수는 또 다시 새로운 국민향수가 되었는가보다.ㅎㅎ (그러고보면, 향수탐색을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의 향수 취향을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많은 지인들이 조 말론 향수를 추천했었다. ㅎㅎㅎ ) 

어쨌거나 저가의 향수는 아니고, 미니어쳐도 나오지 않아서 그나마 미니어쳐에 가까운 사이즈는 9ml의 travel size다. 그나마도 조 말론 공식 사이트에서는 팔지 않고 아마존 등을 통해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조 말론 향 탐색이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백화점에서 온라인으로 필요한 화장품을 살 때 종종 샘플로 딸려올 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샘플은 내가 향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양도 1.5ml 정도로 매우 적지만, 그래도 향이 내게 맞는지 내가 좋아하는지 확인하기엔 충분한 분량이다. 나의 첫 조 말론 향수 역시 백화점에서 딸려온 샘플이었다. 향의 이름은 향의 이름은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English Oak and Haze nut).

처음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을 맡았을 때는 남자 스킨향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향수는 좀 여성스러운 품목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뿌리고 다닐 향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이 향이 중독성이 있는 것이었다. 나무냄새를 베이스로 하고 있는데 스파이시하고 알싸한 냄새가 나고, 허브냄새 흙냄새 같은 것이 폴폴 풍겨오는 향이다. 헤이즐넛이라고 해서 커피 냄새나 넛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나는게 아니다. 아마 생(?) 헤이즐넛인 듯. 가을에 걷다가 바닥에 떨어진 헤이즐넛 열매를 밟았을 때 콱 으깨지면서 날법한 크리스피한 냄새가 첫 향이다. 이 냄새 때문에 훅 하고 숲냄새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나무 냄새는 잉글리시 오크인 모양인데, 축축한 흙에서 올라올 것 같은 그런 냄새가 난다. 아무튼 이 향이 좋아서 가끔씩 자기 전에 뿌리기 시작했는데, 마치 숲속에 있는 것처럼 평화로운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알싸한 향기가 코끝에 와닿았다가 사라지고. 그런 느낌에 집중하다보니 불면증인 주제에 잠도 잘 잤다. 그런데 문제는, 딱히... 남자 스킨향 같은 향을 뿌리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내 캐릭터 자체가 약간 중성적인 캐릭터라서 향수를 뿌리고 다닌다는 것은 내게 여성적인 면을 강조해 발란스를 잡아주는 장치(?)인데 그 와중에 굳이 남자스킨 향을 풍기며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고 해야 하나. 

이 난제를 나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이 향,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English Oak and Redcurrant) 였다.

조 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Jo Malone English Oak and Redcurrant)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는 작년 9월에 잉글리시 오크 헤이즐넛과 함께 발매된 나름대로 신향이다. 베이스는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과 같아서 기본적으로는 우디하고 알싸한 향이 나는데, 레드커런트는 거기에 살짝 과일향과 꽃향이 은은하게 얹혀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꽃향기 때문인지 헤이즐넛 보다는 훨씬 남자 스킨향 같은 느낌이 덜 하고,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했던 그 알싸한 나무냄새가 나서 참 좋았다. 뒤로 갈수록 남는 잔향은 조금 드라이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나의 난제를 해결해준 향. 당분간은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를 데일리 향수로 써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헤이즐넛 쪽이 더 좋다. ㅎㅎㅎ 이러다가 그냥 남자 스킨 향을 풍기며 다니게 될 지도 모르겠다. ㅎㅎㅎ)

 

조말론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Jo Malone English Pear and Freesia)

조 말론 향수 중에서 또 새로 맡아보게 된 향수는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English Pear and Freesia)였다. 조 말론 향수 중에서도 베스트 셀러에 속하는 향이라고 하니 이게 바로 그 국민향인지도! ㅎㅎㅎ 프리지아라고 해서 꽃향기가 강할 것 같지만, 첫향에서는 사실 프리지아 향은 거의 나지 않고 서양배 향인 건지 알싸한 향이 화악 퍼지다가, 뒤로 갈 수록 프리지아 향이 점점 진하게 올라온다. 잔향은 거의 프리지아인 것 같다. 콜롱이라서 더 향이 빨리 날아간다고는 하는데, 내 느낌에는 프리지아 향이 꽤 오래 간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꽃향기가 잔향으로 오래 늘러붙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래도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는 그렇게 무겁지 않은 느낌이고 초반의 알싸함이 균형을 잘 잡아준다는 생각이 든다.


지인들이 추천해 준 향으로는 우드세이지 앤 씨쏠트와 다크앰버 앤 진저릴리 등이 있는데, 둘다 궁금하다. 그리고 얼마전 온라인으로 스킨을 주문했더니 조 말론 샘플이 또 딸려온다고 하는데, 그건 피오니 블라썸 앤 스웨이드라고 한다. 그게 오면 또 다시 조말론 시리즈로 탐색글을 올려보도록 하겠다. 






구글에 '국민향수' 라고 쳐보면 랑방 향수들이 뜬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많이 뜨는 것은 연보라색 동그란 향수병에 들어있는 랑방 에끌라 드 아르페쥬. 한참 국민향수 랭킹 1위를 달리던 에끌라 드 아르페쥬는 곧 랑방 메리미에게 '국민향수'의 지위를 넘겨주게 되었다고 한다. 그게 10년전 쯤의 일인 듯 한데..ㅎㅎㅎ 여튼 여전히 '국민향수' 하면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랑방,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써보았다는 랑방의 향수들을 한번 맡아볼까? 킁킁킁 ㅎㅎㅎ 



랑방 에끌라 드 아르페쥬 (Lanvin Eclat d'Arpege)


랑방 에끌라 드 아르페쥬 (Lanving Eclat D'Arpege) 는 대표적인 국민향수의 이미지다. 향은 복숭아향에 꽃향기가 섞인 것 같은데 향긋하고 부드러운 냄새가 난다. 청순하고 은은한 향이다. 하지만 내 기준에는 지나치게 은은해서, 코딱지만한 향수를 아주 들이붓다시피 손목에 부어도 금방 공기중으로 날아가버리는 느낌이다. 향 자체가 무난해서 쉽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것 같긴 한데, 한편으로는 그만큼 개성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 맡았을 때는 국민향수의 높은 명성에 비해서 그냥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향 자체가 워낙 부드럽기 때문에 코에 자극적이지 않고, 다른 향수들에 비해 인위적인 느낌도 덜한 편이라 종종 찾게 된다. 미니어쳐는 실제로 보면 더 작다. 용량은 4ml 정도. 그래도 나름대로 오리지널의 향수병을 그대로 줄여놓은 느낌이라서 귀엽긴 아주 귀엽다. 




쟌느 랑방 (Jeanne Lanvin)


오히려 잔느 랑방 (Jeanne Lanvin) 이 나는 좀 더 좋았다. 랑방 향수들이 전반적으로 다 사랑스럽고 은은한 꽃향기이긴 한데, 잔느 랑방은 탑노트가 좀 비누냄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은하고 달달하다는 점에서는 에끌라 드 아르페쥬랑 비슷했지만, 거기에 좀 더 깔끔하고 상큼한 냄새가 난다. 깨끗한 향이라는 느낌이다. 미들노트로 갈 수록 좀 더 달달해진다. 

잔느 랑방은 랑방의 창시자인 잔느 랑방을 기념해 만든 향수라고 한다. 미니어쳐 역시 오리지널 향수병을 본따서 아주 귀엽다. 랑방의 향수들은 전반적으로 여성스러움과 사랑스러움을 어필하는 것 같다. 대체로 은은하고 무난한데, 그런만큼 좀 재미가 없고 평범하다. 그리고 내 취향에는 지나치게 소녀스러운 듯. 그래도 잔느 랑방이 셋 중에는 제일 마음에 든다. 





랑방 메리미 (Lanvin Merry Me)


에끌라 드 아르페쥬 이후에 출시되어 국민향수의 명성을 이어 받았다는 일명 프로포즈 향수 랑방 메리미 (Lanvin Merry Me) 다. 이름도 이름이지만 병도 예뻐서 인기가 많았다는 것 같다. 원래 향수병에는 리본도 매어 있다는데 미니어쳐엔 그런게 있을리가 없다. ㅎㅎㅎ 이름 때문에 굉장히 사랑스러운 향기가 날 줄 알았는데, 처음 뿌렸을 때는 의외의 향에 흠칫 놀랐다. 아니.. 어디서 이렇게 끈덕거리는 꽃향기가. 가끔 동네 산책하는 길에 풍겨오는 끈적한 꽃냄새. 꿀냄새 같기도 한 묵직한 향이 탑노트에서 풍겨온다. 대체 노트 설명에도 없는 이 끈덕진 꽃냄새는 뭐란 말인가. 그리고 이게 어딜봐서 메리미냐. 그래도 메리미라면 조금 더 가볍고 사랑스럽고 밝아야 하는 거 아님? 암튼 납득이 안가서 그런지 자꾸 뿌려보게 되는 향수인데, 독특해서 자기 개성이 분명한 건 마음에 든다. 현재까지는 내 취향에서 좀 많이 벗어나긴 하는데 좀 더 두고 봐야겠다. ㅎㅎㅎ


20대에만 해도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나를 끌어안으면 '아기냄새'가 난다고 했다. '아기냄새'가 대체 뭔데? 라고 물었더니..(아기가 없어서 아기 냄새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우유 냄새 같기도 하고 파우더리하고 약간 시큼한 듯한 냄새라고 했는데 내 체취를 내가 맡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러다가 어느날 그 냄새를 맡게 되었는데... 아니... 내 이불에서 그런 냄새가 나더라... ㅎㅎㅎ 암튼, 서른 중반을 훨씬 넘긴 (구체적인 나이는 얘기하지 않겠다 ㅎㅎ) 이 나이에 아기 냄새가 날리는 없겠지만, 어쩐지 소위 아기 냄새를 컨셉으로 나온 향수들에는 역시 관심이 갔다. 


대표적인 아기 냄새 컨셉의 향수들은 불가리 쁘띠 에 마망이라던가, 버버리 베이비 터치라던가, 베이비 토스라던가 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 역시 명성이 자자한 '국민 향수'인 듯 했는데, 항상 리뷰가 엇갈렸다. 아기 냄새인 줄 알고 샀으나 아니어서 실망이었다는 리뷰도 많았고. 가장 유명한 불가리 쁘띠 에 마망 정도는 한번 맡아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미니어쳐를 팔지 않았다. 사실 워낙 '한물 간' 분이다보니 20불 전후로 오리지널 사이즈를 살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시향을 해보지 않은지라 큰 걸 사면 다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뒤적거리다가 눈에 들어온 두 아기냄새 향수를 소개한다. 


제일 마음에 드는 아기냄새 컨셉의 향수는,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다.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 (Harajuku Lovers Baby)


하라주쿠 러버스는 미국의 팝스타 그웬 스테파니가 만든 향수인데, 자기 백 댄서 네명을 모델로 해서 만든 것으로, 지(G), 릴 앤젤(L'il Angel), 뮤직(Music), 러브(Love), 베이비(Baby) 이렇게 다섯 개 종류가 있다. (G는 그웬 스테파니 본인이라고 하는데, 혼자 노랑머리다. ㅎㅎㅎ 나머지 백댄서들은 일본인이라서 검은 머리.) 그웬 스테파니의 백댄서들은 하라주쿠의 패션피플 컨셉으로 나왔는데, 이 컨셉은 한국계 미국배우인 마가렛 조에게서 미국에서의 동양인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아무튼, 하라주쿠 러버스 향수는 이후에도 도쿄스타일, 비치스타일, 팝 일렉트릭 스타일 등으로 변형을 거듭해 왔는데, 그 때마다 향이 살짝살짝 변하기는 하지만 베이비는 일관적으로 계속 베이비 파우더 계열의 향인 듯 하다. 현재 오리지널 스타일은 단종된 것 같지만, 내가 누군가? 20년전 국민향수만 판다는 향알못 선생 아닌가. ㅎㅎㅎ 그래서 결국 오리지널 미니어쳐를 구했다. 다른 미니어쳐들에 비해서는 용량이 큰 편이지만, 그래봤자 10ml다. ㅎㅎ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 향은 달달한 베이비 파우더 향이다. 첫향부터 분유 냄새 같은 파우더리하고 달달한 냄새가 나는데 살짝 향긋한 과일 냄새 같은 게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텁텁하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미국의 10대 애들이 좋아했던 향을 뒤늦게 늙은 내가 산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자기 색깔 분명하고 마음에 드는 향수다. 역시 중요한 자리에는 뿌리고 나가면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어제는 친한 언니가 밥 사준다고 나오라기에 이걸 뿌리고 나갔다. (귀엽게 보여서 맛있는 걸 얻어 먹으려고 ㅎㅎㅎ) 개인적으로는 모양도 마음에 든다. 저 베이비를 위로 쑥 뽑으면 스프레이가 나온다. 몇 안 되는 스프레이 형 미니어쳐다. ㅎㅎㅎ 



데메테르 베이비 파우더 / 데메테르 퍼지 네이블



베이비 파우더 향은 데메테르에서 제일 유명한 향 중에 하나다. 그런데 정말 이름 그대로 존슨즈 베이비 파우더 냄새가 난다. 어렸을 때 엉덩이에 땀띠 나면 엄마가 펑펑 먼지나게 퍼프로 두들겨 주던 그 파우더 향이다. 맡으면 반갑기도 하고 너무 똑같아서 재미있기도 한데, 사실... 이걸 향수라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ㅎㅎㅎ 그리고 이걸 뿌리느니 그냥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바르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ㅎㅎㅎ 아무튼 다른 향수들처럼 시간에 따라서 향이 변하거나 여러 향이 조합된 느낌이 아니라서 그런지 향수로서의 재미는 좀 덜한 것 같다. 정말 어디에 뿌리고 나가기에도 조금 애매한 것 같기도. ㅎㅎㅎ 가끔 재미삼아 뿌릴 수는 있을 것 같긴 하다. 퍼지 네이블의 경우는 겟잇뷰티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향수 2위로 뽑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긴 있다는 건데... ㅎㅎㅎ) 퍼지 네이블은 복숭아 냄새가 나는데 바닐라 향처럼 부드러운 향에 묻혀 있어서, 과일향 같기도 하고 약간 아기 냄새 같기도 하고 달착지근한 느낌도 들고 그렇다. 둘다 향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데메테르는 애초에 살 때부터 그저 향이 궁금했던 거였고, 또 향수병 자체가 예쁜 편이 아니라서 미니어쳐 대신 샘플러로 구매했다. 사진에는 되게 크게 나왔지만 사실 손가락 크기만 하다. ㅎㅎㅎ 언젠가 함께 구매한 다른 데메테르 향도 올리도록 하겠다.




마크 제이콥스 오, 롤라! (Marc Jacobs Oh, Lola!)


마크 제이콥스에서 나온 오, 롤라! 솔직히 미니어쳐 병이 너무 예뻐서 갖고 싶었다. 오리지널과 생김새는 똑같지만 크기가 손가락 하나 정도 밖에 안 된다. 미니어쳐를 찾기가 어려워서 이베이에서 찾았는데... 근데... 어째... 박스가 없다? ㅋㅋㅋㅋ 마음 한 구석에 수상한 의구심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혹시 어디서 빈병을 줏어다가 큰 향수에서 덜어내어서 판거 아님?! 하고... ㅋㅋㅋ 미니어쳐들이 대개 스플래시 타입이다 보니 얼마든지 가능하다! ㅎㅎ 하지만 향이 너무 좋아서, 뭐 빈병을 주워다 팔았건 원래 향수가 들어있던 미니어쳐가 맞건, 오, 롤라!를 섭렵할 수 있게 되어 기뻤다. 


오, 롤라!는 굉장히 개성있는 향수여서 좋았다. 일단 첫 노트에서 열대 과일처럼 따뜻하고 달달한 향이 나더니 중간부터 바닐라처럼 부드러운 향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달달함은 점점 더 강해진다. 그러다보니 조금 도발적이고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같은 느낌도 준다. 그러니까 굳이 캐릭터로 표현하자면, 어디 멀리 휴양지같은 섬에 살다가 동네로 이사 온 언니인데, 아무래도 옛날에 좀 놀던 언니 같지만 보다보면 아이같이 해맑은 구석도 있는 그런 향이다. ㅎㅎ


뿌리면 장난스러운 기분이 들 것 같은 향수. 어디 중요한 자리에 갈 때는 안 뿌릴 것 같지만, 일상적인 장소에서 조금 즐겁고 싶을 때 뿌리고 싶은 향수다. 자기 전에 뿌려도 좋았다. ㅎㅎㅎ 






끌로에 향수 중에 제일 유명한 건 끌로에 오 드 퍼퓸 (Chloe Eau de Parfum)인데 흔히 끌로에 EDP 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후에 로즈 뜨 끌로에 (Roses de Chloe)와 로 드 끌로에 (L'eau de Chloe)가 나왔다. 미니어쳐는 오리지널의 디자인을 본따 만든 것 같지만 아주 투박하기 그지없다. ㅋㅋㅋ 심지어 향수 이름 조차 써 있지 않아서 색을 보고 구별해야 한다 ㅎㅎㅎ (정말 너무 한거 아님? 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에서는 아주 독보적인 싱그러움을 보여준다. 



먼저 끌로에 세 자매 가운데 첫째인, 끌로에 오 드 퍼퓸을 살펴볼까. 


끌로에 오 드 퍼퓸 (Chloe Eau de Parfum)


끌로에 오 드 퍼퓸은 장미향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 장미향이 인위적이지 않고 아주 생장미의 향이라서 굉장히 싱그럽게 느껴진다. 끌로에 중에서는 EDP가 제일 인기가 높은 것 같은데, 깔끔한 비누향과 함께 은은한 생장미의 향기가 풍겨온다. 사실 꽃향기에 조금 질리려던 참이었는데, 여태까지 맡아본 꽃향기 중에서는 정말 끌로에가 최고인 듯!! (...이라고 말은 했으나 사실 아는 향 자체가 아직 별로 없다는 것이 함정 ㅎㅎㅎ) 



로즈 드 끌로에 (Roses de Chloe)


로즈 드 끌로에. 미니어쳐만 보면, 아니 아까 그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아니다. 색을 잘 보면 미세하게 이게 더 핑크다 ㅎㅎ 끌로에의 장미향이 인기가 많아지다 보니 아예 장미향을 몰아몰아 출시한 것이 로즈 드 끌로에다. 확실히 끌로에 EDP에 비해서는 훨씬 풍성한 장미향이 풍긴다. 개인적으로는 로즈 드 끌로에가 끌로에 EDP보다 더 마음에 드는데, 그만큼 자기 개성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향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싱그럽기는 매한가지. 




로 드 끌로에 (L'eau de Chloe)


로 드 끌로에는 끌로에 삼자매 계열이면서도 독특하고 매력적인 향수다. 일단 첫 향에서는 알싸한 풀향기가 풍기는데, 살짝 남자 스킨향 같은 느낌이 있어서 위의 언니 둘에 비해 중성적인 느낌이 들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은은한 장미향에서 여성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오면서 균형을 잡아준다. 풀향기건 장미향이건 싱그러운 느낌은 세 자매와 비슷한 계열인데, 아무래도 꽃향기가 훅훅 풍기는 언니들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산뜻한 향을 낸다. 개인적으로는 끌로에 세 자매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향이다. 로 드 끌로에는 나중에 오리지널을 사서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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