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말론 향수는 소위 '니치(niche) 향수' 라고 부르는 향수 중 하나다. 니치향수라는 개념은 2010년대 중반쯤 등장했는데, 국민들이 모두 국민향수를 뿌리다 보니 모두 냄새가 다 똑같아지는 바람에, 나름대로 남들과 다른 향으로 구분되고 싶은 사람들이 좀 덜 알려진 고급향수를 찾기 시작했는데, 이런 향수들을 소위 '니치 향수'라고 묶어부른다. 니치 향수에 속하는 향수들은 조 말론, 딥티크, 아닉구딸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친구말에 따르면 2-3년 전부터 교회에 가면 모두에게서 조말론 향이 났다고 하니 ㅋㅋㅋ 아마도 니치향수는 또 다시 새로운 국민향수가 되었는가보다.ㅎㅎ (그러고보면, 향수탐색을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들의 향수 취향을 물어보기 시작했는데, 많은 지인들이 조 말론 향수를 추천했었다. ㅎㅎㅎ )
어쨌거나 저가의 향수는 아니고, 미니어쳐도 나오지 않아서 그나마 미니어쳐에 가까운 사이즈는 9ml의 travel size다. 그나마도 조 말론 공식 사이트에서는 팔지 않고 아마존 등을 통해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조 말론 향 탐색이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백화점에서 온라인으로 필요한 화장품을 살 때 종종 샘플로 딸려올 때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샘플은 내가 향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양도 1.5ml 정도로 매우 적지만, 그래도 향이 내게 맞는지 내가 좋아하는지 확인하기엔 충분한 분량이다. 나의 첫 조 말론 향수 역시 백화점에서 딸려온 샘플이었다. 향의 이름은 향의 이름은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English Oak and Haze nut).
처음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을 맡았을 때는 남자 스킨향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향수는 좀 여성스러운 품목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뿌리고 다닐 향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이 향이 중독성이 있는 것이었다. 나무냄새를 베이스로 하고 있는데 스파이시하고 알싸한 냄새가 나고, 허브냄새 흙냄새 같은 것이 폴폴 풍겨오는 향이다. 헤이즐넛이라고 해서 커피 냄새나 넛 같은 고소한 냄새가 나는게 아니다. 아마 생(?) 헤이즐넛인 듯. 가을에 걷다가 바닥에 떨어진 헤이즐넛 열매를 밟았을 때 콱 으깨지면서 날법한 크리스피한 냄새가 첫 향이다. 이 냄새 때문에 훅 하고 숲냄새 같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나무 냄새는 잉글리시 오크인 모양인데, 축축한 흙에서 올라올 것 같은 그런 냄새가 난다. 아무튼 이 향이 좋아서 가끔씩 자기 전에 뿌리기 시작했는데, 마치 숲속에 있는 것처럼 평화로운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알싸한 향기가 코끝에 와닿았다가 사라지고. 그런 느낌에 집중하다보니 불면증인 주제에 잠도 잘 잤다. 그런데 문제는, 딱히... 남자 스킨향 같은 향을 뿌리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내 캐릭터 자체가 약간 중성적인 캐릭터라서 향수를 뿌리고 다닌다는 것은 내게 여성적인 면을 강조해 발란스를 잡아주는 장치(?)인데 그 와중에 굳이 남자스킨 향을 풍기며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고 해야 하나.
이 난제를 나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이 향,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English Oak and Redcurrant) 였다.
조 말론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 (Jo Malone English Oak and Redcurrant)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는 작년 9월에 잉글리시 오크 헤이즐넛과 함께 발매된 나름대로 신향이다. 베이스는 잉글리시 오크 앤 헤이즐넛과 같아서 기본적으로는 우디하고 알싸한 향이 나는데, 레드커런트는 거기에 살짝 과일향과 꽃향이 은은하게 얹혀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꽃향기 때문인지 헤이즐넛 보다는 훨씬 남자 스킨향 같은 느낌이 덜 하고,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했던 그 알싸한 나무냄새가 나서 참 좋았다. 뒤로 갈수록 남는 잔향은 조금 드라이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나의 난제를 해결해준 향. 당분간은 잉글리시 오크 앤 레드커런트를 데일리 향수로 써보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헤이즐넛 쪽이 더 좋다. ㅎㅎㅎ 이러다가 그냥 남자 스킨 향을 풍기며 다니게 될 지도 모르겠다. ㅎㅎㅎ)
조말론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Jo Malone English Pear and Freesia)
조 말론 향수 중에서 또 새로 맡아보게 된 향수는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 (English Pear and Freesia)였다. 조 말론 향수 중에서도 베스트 셀러에 속하는 향이라고 하니 이게 바로 그 국민향인지도! ㅎㅎㅎ 프리지아라고 해서 꽃향기가 강할 것 같지만, 첫향에서는 사실 프리지아 향은 거의 나지 않고 서양배 향인 건지 알싸한 향이 화악 퍼지다가, 뒤로 갈 수록 프리지아 향이 점점 진하게 올라온다. 잔향은 거의 프리지아인 것 같다. 콜롱이라서 더 향이 빨리 날아간다고는 하는데, 내 느낌에는 프리지아 향이 꽤 오래 간다는 느낌이었다. 사실 꽃향기가 잔향으로 오래 늘러붙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래도 잉글리시 페어 앤 프리지아는 그렇게 무겁지 않은 느낌이고 초반의 알싸함이 균형을 잘 잡아준다는 생각이 든다.
지인들이 추천해 준 향으로는 우드세이지 앤 씨쏠트와 다크앰버 앤 진저릴리 등이 있는데, 둘다 궁금하다. 그리고 얼마전 온라인으로 스킨을 주문했더니 조 말론 샘플이 또 딸려온다고 하는데, 그건 피오니 블라썸 앤 스웨이드라고 한다. 그게 오면 또 다시 조말론 시리즈로 탐색글을 올려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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