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만 해도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나를 끌어안으면 '아기냄새'가 난다고 했다. '아기냄새'가 대체 뭔데? 라고 물었더니..(아기가 없어서 아기 냄새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우유 냄새 같기도 하고 파우더리하고 약간 시큼한 듯한 냄새라고 했는데 내 체취를 내가 맡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러다가 어느날 그 냄새를 맡게 되었는데... 아니... 내 이불에서 그런 냄새가 나더라... ㅎㅎㅎ 암튼, 서른 중반을 훨씬 넘긴 (구체적인 나이는 얘기하지 않겠다 ㅎㅎ) 이 나이에 아기 냄새가 날리는 없겠지만, 어쩐지 소위 아기 냄새를 컨셉으로 나온 향수들에는 역시 관심이 갔다.
대표적인 아기 냄새 컨셉의 향수들은 불가리 쁘띠 에 마망이라던가, 버버리 베이비 터치라던가, 베이비 토스라던가 하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그들 역시 명성이 자자한 '국민 향수'인 듯 했는데, 항상 리뷰가 엇갈렸다. 아기 냄새인 줄 알고 샀으나 아니어서 실망이었다는 리뷰도 많았고. 가장 유명한 불가리 쁘띠 에 마망 정도는 한번 맡아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미니어쳐를 팔지 않았다. 사실 워낙 '한물 간' 분이다보니 20불 전후로 오리지널 사이즈를 살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시향을 해보지 않은지라 큰 걸 사면 다 쓸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뒤적거리다가 눈에 들어온 두 아기냄새 향수를 소개한다.
제일 마음에 드는 아기냄새 컨셉의 향수는,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다.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 (Harajuku Lovers Baby)
하라주쿠 러버스는 미국의 팝스타 그웬 스테파니가 만든 향수인데, 자기 백 댄서 네명을 모델로 해서 만든 것으로, 지(G), 릴 앤젤(L'il Angel), 뮤직(Music), 러브(Love), 베이비(Baby) 이렇게 다섯 개 종류가 있다. (G는 그웬 스테파니 본인이라고 하는데, 혼자 노랑머리다. ㅎㅎㅎ 나머지 백댄서들은 일본인이라서 검은 머리.) 그웬 스테파니의 백댄서들은 하라주쿠의 패션피플 컨셉으로 나왔는데, 이 컨셉은 한국계 미국배우인 마가렛 조에게서 미국에서의 동양인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강화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아무튼, 하라주쿠 러버스 향수는 이후에도 도쿄스타일, 비치스타일, 팝 일렉트릭 스타일 등으로 변형을 거듭해 왔는데, 그 때마다 향이 살짝살짝 변하기는 하지만 베이비는 일관적으로 계속 베이비 파우더 계열의 향인 듯 하다. 현재 오리지널 스타일은 단종된 것 같지만, 내가 누군가? 20년전 국민향수만 판다는 향알못 선생 아닌가. ㅎㅎㅎ 그래서 결국 오리지널 미니어쳐를 구했다. 다른 미니어쳐들에 비해서는 용량이 큰 편이지만, 그래봤자 10ml다. ㅎㅎ
하라주쿠 러버스 베이비 향은 달달한 베이비 파우더 향이다. 첫향부터 분유 냄새 같은 파우더리하고 달달한 냄새가 나는데 살짝 향긋한 과일 냄새 같은 게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텁텁하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미국의 10대 애들이 좋아했던 향을 뒤늦게 늙은 내가 산 것 같은 찝찝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자기 색깔 분명하고 마음에 드는 향수다. 역시 중요한 자리에는 뿌리고 나가면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어제는 친한 언니가 밥 사준다고 나오라기에 이걸 뿌리고 나갔다. (귀엽게 보여서 맛있는 걸 얻어 먹으려고 ㅎㅎㅎ) 개인적으로는 모양도 마음에 든다. 저 베이비를 위로 쑥 뽑으면 스프레이가 나온다. 몇 안 되는 스프레이 형 미니어쳐다. ㅎㅎㅎ
데메테르 베이비 파우더 /
데메테르 퍼지 네이블
베이비 파우더 향은 데메테르에서 제일 유명한 향 중에 하나다. 그런데 정말 이름 그대로 존슨즈 베이비 파우더 냄새가 난다. 어렸을 때 엉덩이에 땀띠 나면 엄마가 펑펑 먼지나게 퍼프로 두들겨 주던 그 파우더 향이다. 맡으면 반갑기도 하고 너무 똑같아서 재미있기도 한데, 사실... 이걸 향수라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ㅎㅎㅎ 그리고 이걸 뿌리느니 그냥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바르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ㅎㅎㅎ 아무튼 다른 향수들처럼 시간에 따라서 향이 변하거나 여러 향이 조합된 느낌이 아니라서 그런지 향수로서의 재미는 좀 덜한 것 같다. 정말 어디에 뿌리고 나가기에도 조금 애매한 것 같기도. ㅎㅎㅎ 가끔 재미삼아 뿌릴 수는 있을 것 같긴 하다. 퍼지 네이블의 경우는 겟잇뷰티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향수 2위로 뽑혔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말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긴 있다는 건데... ㅎㅎㅎ) 퍼지 네이블은 복숭아 냄새가 나는데 바닐라 향처럼 부드러운 향에 묻혀 있어서, 과일향 같기도 하고 약간 아기 냄새 같기도 하고 달착지근한 느낌도 들고 그렇다. 둘다 향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데메테르는 애초에 살 때부터 그저 향이 궁금했던 거였고, 또 향수병 자체가 예쁜 편이 아니라서 미니어쳐 대신 샘플러로 구매했다. 사진에는 되게 크게 나왔지만 사실 손가락 크기만 하다. ㅎㅎㅎ 언젠가 함께 구매한 다른 데메테르 향도 올리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