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에 대해 알지 못하던 시절, 그러니까 여전히 향.알.못이지만 지금보다 더더욱 향.알.못이던 시절에는, 향수를 뿌리고 나면 그 향이 변하지 않는 줄 알았다. 향수냄새가 싫다고 생각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몇몇 향수의 잔향, 특히 사람의 체취와 뒤섞인 베이스노트가 내 기관지를(?) 못살게 굴어서 자꾸 딸꾹질이 나거나 속이 울렁거린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다시한번 엄숙하게 잔향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ㅎㅎ)
향수탐색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향수는 뿌리고 나면 크게 세번 정도 향이 변한다. 향수의 향은 대개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탑노트는 알코올이 날아간 직후의 향, 미들노트는 뿌린지 10-15분 정도 지난 후에 나타나는 향, 베이스 노트는 뿌린지 두세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향이다. 현재까지 맡아본(?) 바로는 대체로 시트러스 향이나 톡 쏘는 향들이 탑노트에 배치되고, 머스크나 파우더리한 향들이 베이스에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렇게 향수 향이 변하는데도 게으른 막코이다 보니 부지런하게 킁킁대지 않으면 그 변호를 알아채기 어렵다. ㅎㅎ 그 와중에도 일하다 말고 '어엉?' 할 만큼 그 향이 변화무쌍한 향수들이 있었다. 이 향수들은 향이 확확 변하기 때문에 재미있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그 향수들의 변화무쌍한 향 변화를 기록해보겠다.
모스키노 아이러브러브 (Moschino I love love)
먼저, 향수를 탐색하기 시작한 초반에 산 향수로, 변화무쌍 향수의 매력을 느끼게 해준 향수는 모스키노 아이러브러브다. (뒤의 친구들을 보면 이게 내가 손에 넣은 다섯번째 미니어쳐 향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러브러브는 처음 뿌리면 톡 쏘는 듯한 오렌지와 자몽향이 난다. 처음에는 레몬향이라고 생각했는데, 맡다보니 오렌지와 자몽에 가깝다. 처음 아이러브러브를 사서 뿌렸을 때는 탑노트를 맡고 잘못 샀다고 생각했다. 십대에나 바르던 레몬향 로션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드디어 온라인으로 시향없이 구매하는 방법이 실패했다고 슬퍼하며, 다시 일자리로 돌아와 일을 했는데, 한 2-30분 후에 별 생각없이 손목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다가 깜놀. 언제 바뀌었는지 모르겠는데, 향이 망고향 같은 은은한 과일향과 꽃향기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 대체 이 향은 어디 숨어있다가 나타났을까? 잔향은 어쩐지 좀 파우더리 해진다. 아니 이렇게 변화무쌍할 데가. 확실히 베르사체나 불가리 아메시스트같은 우아한 맛은 없지만 그 확확 변하는 향이 어쩐지 잔재미를 주는 향수였다. 그래선지 의외로 일하면서 자주 뿌리게 되었다. 미니어쳐 병도 아주 귀엽다. 오리지널 향수병보다 훨씬 귀여운 것 같은데, 뚜껑이 똑같이 생겼다. ㅎㅎㅎ
내가 원래 귀찮아서 탑노트-미들노트-베이스노트 정보를 잘 안 긁어오지만, 그래도 오늘은 변화무쌍 특집이나 한번 긁어와보기로 하자. ㅎㅎㅎ
탑노트: 오렌지, 자몽, 레몬, 레드커런트
미들노트: 시나몬 잎, 러쉬, 백합, 티로즈
베이스노트: 머스크, 타나카우드, 시더우드
지미추 오 드 뚜알렛(Jimmy Choo Eau de toilette)
두번째 향수는 지미추 오 드 뚜알렛이다. 하도 인터넷 리뷰에 평이 좋아서 궁금해서 사 본 향수인데, 프루티플로럴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알싸한 향이 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양이다. 표현에 따르면 커리어 우먼을 연상시키면서 자신감 넘치고 관능적이라나....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첫향에는 아주 독한 비누냄새 혹은 매니큐어 지우는 아세톤 냄새 같은게! 난다고 느꼈다 ㅋㅋㅋ 그러다가 미들노트에선 부드럽고 달달해지는데, 첫향에서는 단 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 어디 숨었다가 나온 향인지 몰라 어리둥절. ㅎㅎ 그러다가 마지막 향은 우디하게 마무리된다. 은은하다고 하거나 꽃향기라고 하기에는 첫향의 인상이 좀 강하고 아무튼 내게는 좀 종잡을 수 없는 향수다. ㅎㅎㅎ 그래도 미들노트는 꽤 좋았다. 미니어쳐는 오리지널 향수병이랑 똑같이 생긴 거 같은데, 뚜껑이 그냥 은색이다. 그리고 조금 더 성의없게 (?) 생긴듯. ㅎㅎㅎ
탑노트 - 배즙, 진저
미들노트 - 티로즈, 타이거 오키드
베이스 노트 - 시더우드
입생로랑 파리지엔느 (Ives Saint Laurent Parisienne)
세번째 변화무쌍 향수는 입생로랑 파리지엔느다. 사진에는 하얗게 나왔지만 사실 은은한 분홍색이다. 파리지엔느라고 해서 뭔가 시크한 향이 날 줄 알았는데 아아아주 달달한 향이 나서 당황스러운 향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달달한 향이 꽤 세련되어서 마음에 드는 향수다. 탑노트에서는 솔직히 말해서 살짝 치약냄새 같은 것이 ㅋㅋㅋ 나면서 과일향이 난다. 노트에 따르면 블랙베리와 크랜베리 향인 듯. 그런데 중간에 갑자기 단향이 치고 올라오는데, 그냥 단게 아니라 아아아주 단 카라멜향 같은게 어디서. 아니 이게 어딜 봐서 파리지엔느? ㅎㅎㅎ 베이스는 머스크 때문에 파우더리 해진다. 그런데 그 카라멜 향의 인상이 아주 깊게 남는 달달한 향수다. 달달한 향수가 마음에 들기 쉽지 않은데, 파리지엔느는 그래도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미니어쳐가 오리지널 향수랑 똑같이 생겨서 귀엽다. ㅎㅎ
탑노트 - 블랙베리, 크랜베리, 바이날 어코드
미들노트 - 모란, 바이올렛, 다마스크 로즈
베이스 노트 - 머스크, 베티버, 패츌리, 샌달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