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레플리카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에 반하게 되었나
세포라가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궁금했다. 메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향수도 같이 들어오게 될까?예전 향탐기록에도 잘 나오지만 나는 사실 레플리카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에 오래전부터 꽂혀 있다. 나도 내가 왜 그런 군밤의 냄새(?)에 꽂혔는지는 모르겠다. 첫 시향기에도 그렇게 써 있다. 향은 참 좋지만 자기 몸에서 불타는 장작 냄새가 나길 바라는 사람의 심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다고.
예전 레플리카 시향기
2018/03/19 - [향.알.못의 향수탐색] - 향탐기록 (10) 특정 순간을 재현하는 레플리카 향수 - 마종 마르지엘라 레플리카 재즈클럽, 레플리카 플라워 마켓
그렇게 결론을 내렸건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그 향이 계속 생각나는 게 문제였다. 바이더 파이어 플레이스에는 알 수 없는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만 생각나고 심지어 그 향을 맡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에 있을 때도 세포라에 갈 때마다 쿰쿰거리며 시향을 해 보고 샘플을 받아오기도 했었다. 당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심지어 어느 잠이 안 오는 밤에 파이어 플레이스를 칙칙 공기 중에 뿌리고 잤다. 스스로에게 '여긴 산장이다. 캠프파이어다' 하고 최면을 걸면서. ㅎㅎㅎ 그러다가 훅 잠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정말 심각하게 파이어 플레이스를 구매할 생각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사이즈가 100ml 하나라는 거였다. 게다가 당시 100ml의 가격은 미국 달러로 120불. 차라리 30ml 짜리가 있었다면 미친 척 덜컥 샀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몸에서 군밤냄새를 내기 위해 120불이나 내고 100ml나 되는 향수를 사겠냐 말이다. 그래서 결국 못 산 채로 귀국하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 와서도 자꾸 생각이 난다는 것이었다. 파이어 플레이스의 그 달콤하고 향긋하고 고소하고 알싸한 향기가 자꾸만 생각났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구할 수도 없었다. 검색해 본 결과 압구정에 있는 10꼬르소꼬모에서 레플리카 향수를 판매한다고는 했지만 재즈 클럽이나 레이지 선데이 모닝은 있어도 파이어 플레이스는 없는 것 같았다. 심지어 해외 직구도 알아보았다. 그러나 무려 15만원을 주고 사야했고 통관이니 뭐니 복잡한 절차도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에게 희소템이 되고 만 파이어 플레이스. 내년 3월에 미국에 학회 다녀올 때나 면세점에서 기웃거려 봐야하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세포라가 한국에 들어왔다?
세포라가 오픈하던 날 온라인 매장도 열렸다. 사람들이 줄 서서 들어가는 곳에 같이 줄 서긴 싫고 온라인으로 확인을 해 보니 역시 파이어 플레이스가 있었다! 가격은 15만원. 아아 파이어 플레이스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하다니!! 그런데 손가락으로 주문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 역시나 마음에 망설임이 생겼다. ... 군밤냄새를 위해 내가 정말 15만원이나 지불하고 100ml나 되는 향수를 살 필요가 있는 것인가 하는 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며칠 더 생각해 보자 하고 화면을 껐는데, 며칠 후 다시 들어가 보니 파이어 플레이스만 품절이었다. 왜!? 왜 파이어 플레이스만?! 재즈클럽도 있고 레이지 선데이 모닝도 있고 대중적인 향수도 많은데 도대체 왜 파이어 플레이스만! 여튼 파이어 플레이스는 그렇게 또 다시 희귀템이 되고 말았다. 나에게 집착과 애증을 남긴 채... ㅎㅎㅎ
그러던 어느날 메종 마르지엘라 매장이 신세계에 들어왔다?
그것도 내가 늘 지나가는 향수골목 한 복판에. 아니 레플리카 향수가 대체 몇개나 된다고 이런 매장을? (사진을 보면 쭉 세워놓은 향수가 몇개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쨌거나 갑작스럽게 레플리카 매장이 생겨버리면서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는 더 이상 희귀템이 아닌 것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언제든 파이어 플레이스를 시향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가서 오랜만에 맡아보니 역시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0ml 짜리를 사기에는 망설여진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파이어 플레이스와 밀당을 하고 있는 중이다.
바이 더 파이어 플레이스는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향인 것 같다. 같이 매장을 방문한 친구에게 이게 바로 나에게 애증과 집착을 남긴 파이어 플레이스다 라고 말하니 친구는 시향해 보면서 좋은 향이라며 눈을 치켜떴다. 그런데 니가 말한 게 뭔지는 알겠다. 군밤 냄새인데 이런 냄새가 몸에서 나길 바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고. 차라리 방향제로 쓰면 너무 좋을 거 같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한참 후에도 또 얘기를 꺼냈다. 그 파이어 플레이스 정말 좋은 거 같다고. (그렇게 친구도 파이어 플레이스의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반면, 엄마와 함께 매장 앞을 지나가다가 엄마 이게 내가 좋아하는 향이야- 하고 손에 뿌렸더니 엄마는 온상을 찌뿌리며 말했다. 이건 정말 아닌 거 같다. 라고. 그러니까 파이어 플레이스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제는 누구나 시향 가능한 메종 마르지엘라 매장에 방문해 보시길 바란다. ㅎㅎㅎ
참고로 시향지가 엄청 귀엽다. 레플리카 향수는 약병처럼 생겨서 그 위에 패브릭으로 라벨이 붙어 있는데, 시향지가 그 라벨 모양이다. 시향지도 귀엽지만 그 위에 향수 정보가 쓰여 있어서 헛갈리지도 않고 참 좋다.
그러다보니 오며가며 모은 시향지만 이렇게 많아졌다. 어떤 순간을 재현한 것인지 기록이 적혀있다. (내 허벅지는 신경쓰지 말자 ㅎㅎ) 파이어 플레이스 시향지는 핸드폰 케이스에 끼워두었다. 내가 좋아하는 냄새가 신용카드에 베고 있는 중이다. ㅋㅋㅋ 그리고 여태까지 맡아보지 못했던 레플리카의 다른 향수들도 맡아보고 있다. 언더 더 레몬트리라던가, 위스퍼스 인더 라이브러리 라던가, 비치워크라던가. 그러니 시향기를 곧 기대하셈!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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